전화 한 통의 추석秋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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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월병 부칠게.
응.받으면 잘 먹을게.
생각보다 빨리 왔다.
상자를 열고 그 하나 하나를 깨물으면서 추석이 시작되었다. 일 주일 먼저 추석을 맞은 셈이었다.
나 자신 한국 입맛이라 월병이 엄청 맛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아들이 보내온 건 내가 십 년도 전에 "홍콩산 달걀노른자가 들어간 월병은 비싸긴 하지만 맛있지요."라고 소개받은 명성 높은 고급 월병이 아니던가.
간혹 한개씩 생색도 내며 아들 생각도 하며, 추석은 이렇게 미리 와서 하루 또 하루 내 옆을 지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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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여왕이 돌아가셨단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데 추석과 하등 상관없는 지구 반대편 나라의 왕실 소식.
젊고 예쁜 '다이애나'비 사망 소식에 놀랐던 일이 어제 같은데, 오늘 구순이 넘은 여왕의 서거 소식엔 훨씬 담담하다.
수를 다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노인에게 무슨 감상이 필요할 것인가ㅡ이것이 내가 담담한 이유이긴 하지만 내심 속일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언젠가부터 다이애나비를 동정하느라 여왕에게 약간씩 반감을 느꼈다는 거.
아무 상관도 없는 천리 만리 밖의 왕실 가족이 뭐라고 나는 좋고 싫은 감정을 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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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ㅡ
물난리 속에서 중학생 아들이 엄마에게 한 이 마지막 인삿말에 사람들이 다 감동했어..."
한 시간이 넘도록 아들과 이 얘기 저 얘기.
제주도에서 부산 포항쪽을 거쳐 빠져나간 태풍, 추석 바로 직전까지 변화무쌍한 태풍으로 하여 기상뉴스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태풍권으로 예상되는 지역주민들은 그 대비를 어찌하냐며 계속 애태웠다. 뉴스도 국제화시대라 바다 건너 아들이 지난 번 전화에도 걱정하더니 추석날 저녁 전화에서도 태풍은 멈췄냐고, 피해는 없냐고 물어오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있으니 딱이 피해가 없다 해도, 애석하고 안타까운 소식이 많았지...
어떤 건 아들도 접한 뉴스이고 어떤 건 그래도 한국에 있는 내가 더 자세하다.
태풍과 하천의 범람으로 포항 어느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에서 수 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거기서 생존자로 구조된 어머니, 주차장에 같이 내려갔던 아들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태풍은 막을 수 없어도 죽음은 피할 수 있었다고... 우리 모자는
시간을 되돌려 놓고 과연 '어찌할 것인가" 고민을 나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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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따라 될수록 달을 보려고 생각한다.
추석이 달과 뗄 수 없는 명절이니 그래야 할 것 같아서다. 소녓적부터 그렇게 여겼다.
다행히 낮밤으로 연일 청명한 날씨이다.
달도 말그대로 둥근 달 밝은 달이다.
한참씩 구름 뒤로 흐르지만, 알고보면 새털 흰구름 그래서 내처 기다리면 다시 나타나는 달이다.
달빛 아래 일체가 행복하길. 평화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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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 체조라더니, 모처럼 걷고 싶어진다.
고마운 일이야, 이제 회복된 게지.
코로나19탓인지 그냥 내 몸의 문제 탓인지 거의 한 달은 몇 걸음 동작도 힘이 들었다.
한적한 골목길에, 9월의 밤공기는 상쾌했다.
조금도 이지러지지 않은 둥근 저 달처럼 걷고 있는 내 맘도 만족스럽다.
되돌아 오는 길 내 집 대문을 미는 순간, 홀연 날아와 내 귀에 꽂히는 볼멘 남자의 목소리.
"니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소리가 나는 쪽은 대문을 마주한 2층집이다. 부부싸움? 혹은 형제간의 다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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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란
들판에 황금빛 출렁이는 추수감사절.
오늘 나는 아무 방해 없이 조금의 작업을 했고, 포도나 사과 같은 제철 과일도 틈틈히 먹었고. 보고싶은 드라마도 켜고 보면서
명절이 주는 평화로움에 내내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누군가의 선물. 추석 전날 긴히 나를 불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