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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차고 친구는 비다

수필가 친구

by 새벽종 종Mu

#.

밖에 비 오는 거?

사위가 조용한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직감적으로 드는 느낌이 "비"였다.

역시나.

부슬비가 흰 눈처럼 소리 없이 날리고 있다.

그냥 둘꺼나.

물빨래한 겨울 코트가 빨랫대에 걸쳐있는데...

봄비에 상큼해진 대기에 마음은 왠지 느긋할대로 느긋해져서 큼큼큼 ...문밖으로 코만 내밀고 서 있다가 마지못한 척 일기예보를 읽는다.

잠시 그쳤다가 오전 한때 비.

그럼 걷어서 집안에 들여야겠구나.


#.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의 딸 생각도.

아주 어릴 때 보았는데...

간밤에 읽은 수필 탓이다.

사실은 연락처를 알고 싶었다.

연락처는 얻지 못하고 친구의 글을 읽었다. 수필 한 편, 시 두 편.

부탁을 할까, 그래도 될까? 아냐, 모처럼 연락해서 부탁이라니... 속셈이 있었다고 불쾌할 거야. 그래도 생애 첫 부탁인데, 옛날에 쌓은 추억을 봐서라도...

몇 번을 저울질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

좋은 목적이잖아.

고향을 멀리 벗어나지 않은 친구에겐 내 부탁 정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것이다. 항상 그 정도의 교제범위를 유지하고 지낼 아이다.... 그래도 거절한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도?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지금 가리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란 말이지, 나만 바라보고 있는 저쪽 형편도 생각해야지...


하지만, 나라도 이십 년 만에 연결하여, 실은 부탁이 있어. 이러면 싫을 것이다.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남지. 왜? 하며 밀어내고 싶을 것이다.

거절과 냉소에 변명을 찾다가 나도 모르게 적의가 만들어질 것이다. 쳇, 예전에도 지만 알더니 여전하군! 이러면서.

둘 다 고만고만 어설펐던 그래서 소꿉놀이 같았던 우정의 시기를 "팽ㅡ"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친구도 아니게 되잖아.

그리고 봐봐, 지금 네 상상플랜 속에서 친구를 충분히 의심했고 미워했고 버렸어,


#.

그랬다.

나의 어떤 책무가,

책무라는 것을 받아 든 순간부터 스스로 달음질을 시작하는 내 경향성이,

문득 저 멀리의 친구를 불러냈고,

급한데 도와줄 수 있느냐 물었고,

거절받았다. 동시에 나는 다시 차가워졌다.


#.

새벽 4시.

친구는 자고 있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미안하다.

말갛게 옛 꿈을 비우고

새싹 움트는 빗자욱 사이로 숨결을 모으고 있을 너에게.


친구, 세월 저 너머에 고스란히 꽂혀 있는 마른 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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