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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Jun 07. 2024

빚은 다 갚았는가

다 갚았지

#.

산 아래 미친놈.

사람들이 그놈 미쳤다고들 말했는데, 부른다고 들어갈 것여? 그냥 못 들은 척 지나쳐야지. 죽을     운이라 그랬겠지. 들어오라고 부르니까 들어갔대, 이 양반이 무슨 생각이었던지...


산이 보이고 마을이 끝나는 그쯤에, 남자가 걷고 있는 게 보인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내심 먹이를 노린 것처럼 그놈이 남자더러 들와 보라고 한다. 내 생각엔 그 말 앞에 뭔가 수작이 있었을 것 같다. 집안의 뭐가 고장났다든지, 목이 마르지 않냐든지. 사람의 인정을 일으키는 그런 앞머리로 남자를 꾀어 마당 안으로 들어오게 했으리라.

'그런데 왜 죽였대요?'

묻지 못한다. 오십 년이 넘도록 과부로 살아온 노인은 미친놈한테 왜?라고 캐는 대신 품 안에 칼을 품고 다녔다고.

슬픔도 분노도 대략 증발해서 기억만 넘치는 지금이련만, 그래서겠지만 노인의 서술은 어수선하다. 미친놈이 죗값은 치렀는지, 미친놈이라 풀려나서 버젓이 살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저 키도 작은 젊은 여인이 억울하고 분해서 칼 하나를 품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만 보인다. 성난 파도와 같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났지. 복수의 살의!


몇 개의 마침표 후. 눈앞의 바다 파도는 사라지고 잔잔하기만 하다.

   

딱 한 번 꿈에 찾아와 물어.

"빚은 다 갚았는가?"

"다 갚았지."

나는 솥에 물을 붓느라고 부뚜막에 몸을 기울이고 있는데 외양간께에 서서 그 한 마디여.

그때는 농사지은 걸 거둬들여야 돈이 생기니까 동네 부잣집에서 돈을 꿔다 쓰곤 했어. 장부를 넘겨주는데  자꾸  나오더라고.

"많이도 갖다 썼더만."

"아, 내가 이렇게 저렇게 빌린다고 얘기 다 했지 않았나."

내가 원망하는 줄 알고 설명해 주는 것이지. 갖다 쓸 때마다 다 말해 준 것이니 의심 말라고. 알지. 송아지 한 마리 팔아서 다 갚았어. 내가 빚부터 갚고 있으니 이웃들이 애들 데리고 먹고살 궁리부터 하지... 하며 혀를 끌끌 찼지.

  

'무슨 부부가 이럴까.'

미친놈에게 살해당하는 그 순간마저 빚 갚는 일부터 걱정했을 남편. 생때같은 남편을 잃고 온몸이 절규하는 와중에도 빚부터 갚자고 서둘렀을 아내. 이 둘이 꿈속에 만나 갚았는가, 갚았소. 이 두어 마디를 나누고 있다.

혼자서 그 빚을 다 갚게 해 미안하오. 그리고 믿어주오. 그 빚 내가 허투루 빌려 쓴 게 아니오.ㅡ 너무도 정직하고 선량 채로 생사별리를  하고 말았다.


이미 감동해 버린 채이다.  

화전火田을 관두게 되어 산에서 내려오고, 낯선 경기도 화성의 진땅에서 속고 뜯기며 견디다 어찌어찌 지푸라기라도 잡고 서울로 옮겨왔다.손님에게 맛만 보라고 내어놓은 쑥떡은 그때 지푸라기가 되어준 큰딸이  엊그제 들고 온 것이다.


"담백하고 맛있네요!"

지금은 숨차고 다리 아파 쉬엄쉬엄 골목 한 바퀴에 하루가 다 갈지라도 맑은 샘물 같은 인생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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