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 빠지기 전, 우리의 삶을 떠올려보자. 그때 세상은 단순하고 명확했다. 눈앞에 보이는 강은 강이었고, 눈앞에 보이는 산은 산이었다.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세상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의 인식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더 이상 단순 명확해 보이지 않았다. 십 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 짧은 시간 만에 강은 평평한 평지가 됐고, 산은 깊은 저수지가 됐다.
세상에 영원한 강은 없었고, 또 영원한 산도 없었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었고, 산도 더 이상 산이 아니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은 강과 산뿐만이 아니었다. 한 세기 전에 가치 있다고 받아들여지던 행동은, 현대에는 더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아니게 됐다. 요즘은 시대가 빨리 바뀌어, 작년에 가치 있었던 것들 마저 올해에는 그 가치를 잃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 했으나,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뿐, 그것은 바로 ‘없음’(無)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없음’만은 영원했다. 즉, 허무만은 영원불멸했다.
허무는 우리의 신이 되었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 믿는 종교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허무에 광신적으로 빠져든 나머지, 우리는 말한다.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 죽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을…. 돈이고 권력이고 무슨 의미가 있나, 수억 년이 지나면 이 우주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조차 사라질 것을….
그러나 우리는 사이비 종교에서 빠져나오듯, 허무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암 투병을 하며 병실에 누워있을 때, 그때도 인생의 허무함을 말할 것인가?
비록 강과 산은 계속 바뀌더라도, 우리는 노를 저어 강을 건너야하고 막대를 짚으며 산에 올라야한다. 영원하지 않더라도 강은 다만 강이고, 산은 다만 산일뿐이다.
영원해야만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먹는다면 삶은 가치로 충만해질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마음을 먹기 힘들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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