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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세게 질렀어야 했다

1부 - 진로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화기 너머 싱가포르인 헤드헌터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느껴졌다.


“Hey, we’re just one step away and it’s very close. But… anyway, I respect your decision. Hope you the best"


서류전형에서 여러 차례 면접에 이르기까지, 내 이직 건에 있어 많이 고생해 준 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한 후 핸드폰의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나의, 해외로의 완전 이주 계획도 그대로 종료되었다.


수년 전 싱가포르에서 시니어 매니저로 근무를 하던 내게 여러 차례 글로벌 기업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일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 몇몇은 꽤나 진행이 되었고 오퍼를 받기도 했다.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의무나 계약 같은 게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눌려 앉을 수 있었다. 연봉도 올리고 괜찮은 복지혜택까지 챙기며 말이다. 하지만 난 끝끝내 그 기회를 잡지 않기로 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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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도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여러 번 기회를 마주하기 마련이다. 실력이라 할 수도 있고, 그냥 운이라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굵직한 기회들을 여러 번 마주했던 건 사실이고, 일부는 내 인생 방향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큰 기회였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싱가포르에 남는다는 옵션도 그중 하나였다. 해외에서 근무한 지 오래되었고, 상사도 부하직원도 동료들도 모두 외국인이었다. 지금보다 영어도 유창했고, 몇 년간 성과도 특출 났으니 몸값도 괜찮았다. 한 번 과감히 질러볼 만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수십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종합하자면 그냥, 용기가 부족했다. 잘못 선택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일일이 나열할 순 없지만 가족과 건강 등 돌아가야 할 이유가 수두룩했고, 그 대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합당했다. 노후를 생각해도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고 모든 것이 익숙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때 안정을 택함으로써, 나는 다시는 안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슴 뛰는 도약도, 비범한 시도도 더는 없었다.

자식들에게 들려줄 자랑스러운 모험 이야기도 더는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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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된 이상, 또는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나 전문직이라도 우리는 모두 이러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른바 ‘커리어의 갈림길’이다. 나는 그 갈림길에서 매번 소극적인 선택을 했다. 좁은 길이나 어두운 길이면 감히 발을 들어놓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순탄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몸값을 크게 끌어올릴 기회도 놓쳤고, 미래를 잘 준비하지도 못했다.


사실 나의 커리어 고민은 절대 얕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커리어를 참고하면서 더 나은 커리어를 만들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일반인의 직장생활은 짧지 않기에 커리어상의 선택과 결과를 길게 놓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이직 첫 해는 굉장히 좋아 보이는 선택이 25년 뒤엔 최악의 결과로 끝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짧아서 전체 흐름을 살펴보기 쉬운 프로선수들, 그것도 한국 선수들에게 늘 관심이 갔다. 이들의 커리어는 직장생활의 압축판이었다. 이직(스포츠 용어로는 '이적')도 활성화되어 있고 커리어도 길어봤자 삼십 대 중후반이면 끝나기에 한 사람의 커리어 전체를 조망하기 좋았다.


다른 스포츠도 참고가 되겠지만 그래도 단 하나의 압도적인 목적지가(메이저리그, NBA, NFL 등) 있는 스포츠와는 달리, 축구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뿐 아니라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그, 독일의 분데스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등 최상위급에서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서 여러 갈래 길이 열려 있는 직장 생활과 유사했고, 한국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다음 커리어에 유리한 유럽의 여러 중소리그도, 돈을 벌기 위해 가는 중동리그나 슈퍼스타들이 노후를 보내곤 하는 미국리그(MLS)도 커리어 옵션에 들어가 있어서 직장인들 이야기와 많은 면에서 비슷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 축구 선수들의 커리어를 관찰하면서 그들의 커리어패스 타입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기도 했다.


1. 원클럽맨


첫 클럽에서 은퇴할 때까지 뛰는 선수이다. 현역 K리그 축구 선수 중에서는 전북 현대의 최철순이 가장 유명하다.

그와 같은 직장인은 행운이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들어왔고 회사가 가장 잘 나갈 때를 함께 하면서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은 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역량이 줄어들어 역할이 축소되지만 젊은 친구들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으며 본인이 결정하는 은퇴시기까지 일하는 것이다.

여러 이적 제안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철순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인지, 혹은 가족 등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버티기로 결정했고. 결국은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케이스는 결코 흔하지 않다. 2025년 기준 K리그 1과 2에 등록한 프로선수는 총 984명이며 이 중 원클럽맨은 최철순을 포함해 3명 정도, 0.5%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원클럽맨이라고 끝까지 아름다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감독이나 구단주가 바뀌면 당장 잘릴 수 있는 게 이들이다. 후배들의 존경을 받기는커녕 복도를 막아놓은 짐짝 취급받을 수도 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2. 떠돌이 저니맨


한 클럽에 오래 있지 못하고 계속 이적을 거듭하는 케이스이다. 때로는 몸값을 올려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크게 떼이면서까지 자리를 잡기 위해 옮겨 다니는 유형이다.

한국 축구선수 중 이 유형의 대표적인 선수는 이근호가 있다. 국가대표로서 월드컵 때 골까지 기록할 만큼 만만치 않은 실력의 그는, 군복무를 한 상무팀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11개 팀을 거쳐갔다. 이적 횟수만 열 번이다.


축구선수보다 커리어가 긴 직장인도 이만큼 이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봉이나 워크로드보다 옮길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문제다. 동일한 직무로 옮기더라도 회사 내의 시스템이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적응이 필요하고 상사도, 동료도, 부하직원도 모두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도 이직을 많이 경험하진 않았지만 매번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지만, 이직이 확정된 후 첫 출근이 점점 다가올 때의 불안함, 그리고 첫 출근 날 사무실을 돌며 인사하는 순간의 그 어색함이란… 나 같은 내향적 인간에게는 극심한 부담이었다.

이런 잦은 이직은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크지 않은 사람만이 감내할 수 있는 일이다.


Lee_Keun-Ho_-_1.jpg Photo by TAKA@P.P.R.S via Wikimedia Commons. Licensed under CC BY-SA 2.0.


3. 상향 이직하는 케이스


재능이 남다르고 성과를 내는 축구선수들은 곧잘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게 된다. 직장인으로 따지면 더 좋은 회사의 더 좋은 포지션 제안을 받는 것이다. 전화든 메일이든 제안을 받고 나면, 큰 고민이 시작된다.


“지금은 내가 잘하고 있다지만 저기 가서도 그럴까?”


해외로 이적하여 도전한 축구 선수들을 보면 박지성, 손흥민처럼 성공한 이들도 있고, 이동국이나 이천수처럼 잘 안 된 선수도 있다. 박주영은 첫 번째 이직은 괜찮았으되 두 번째 이직에서 망했다. 그나마 이런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실패 후에도 보란 듯 자리를 다시 잡긴 했으나 잘못된 이적으로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진 선수들도 적지 않다. 대단한 유망주로 평가를 받다가 첫 이적 팀을 잘못 골라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실전 감각이 녹슬어 결국 임대로 이런저런 팀을 떠돌다가 방출당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시 자리를 잡지 못해 세미 프로 등을 전전하다가 결국 커리어를 마감하는 케이스 말이다.

내가 몇 번의 상향 이직 기회에서 고사한 것은 그들처럼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많은 것을 걸고 갔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제자리로 돌아오지도 못할까 봐 걱정해서였다.


4. 하향 이직하는 케이스


눈높이를 낮춰 지금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작은 구단이나, 낮은 수준의 리그로 이적하는 케이스이다. 직장인으로 보자면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혹은 같은 대기업이라도 규모나 연봉이 좀 더 작은 곳으로 이직하는 케이스이다.


축구선수 중에서는 차두리나 구자철 등이 나이가 든 뒤 유럽에서 K리그에 돌아와 커리어 마지막을 잘 정리했고, 이재성이나 김민재, 이승우, 이동경, 이동준을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기존 회사와 별 차이가 없거나 한수 아래 팀으로 이직한 후 그걸 발판으로 더 높게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지금 팀에서 입지를 잃은 선수들이 좀 더 낮은 팀으로 가서 기회를 더 많이 받으려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그들 중 일부는 잘 됐고, 일부는 실패했다. 박지성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줄어든 출전 기회를 극복하고자 한참 아래로 분류되는 QPR로 이직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맨유에서 아름답게 은퇴하는 게 더 좋았을 뻔했다.


직장인에게도 이러한 이직은 언젠가는 고민해야 할 길이다. 회사에서 슬그머니 나를 전력 외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조금 작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볼까, 혹은 나는 더 크고 대단한 회사에 가고 싶은데 바로 갈 수 없으니 살짝 어딘가를 밟고 갈까. 둘 다 어마어마한 불확실성을 안고 가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네 가지 커리어 패스를 정리해 보자면, 원클럽맨은 되기도, 또 되었더라도 존경받으며 마무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저니맨은 이직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상향식 이직이나 하향식 이직 모두 잘 된다는 보장이 없고 실패할 확률, 그리고 실패했을 때 재기하지 못할 확률을 내포하고 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염려되어 주저하는 선수들은 나처럼 어중간한 커리어를 걷는다.

위 네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다섯 번째 경로다.


5. 이도 저도 아닌 수동적인 커리어


팀에서 성장해서 주전 선수로 뛰기도 하고 원해서든 원치 않아서든 이적도 몇 번 하긴 하지만 커리어를 전략적으로 설계하고 관리한 것이 아니기에 상황에 끌려가기만 하다가 나이가 차서 조용히 은퇴하게 되는 케이스 말이다. 축구 선수들도 이런 케이스가 가장 많다고 본다.


물론 이 케이스에 접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실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K리그 중하위권에서 가끔 교체로 출전하는 노장선수 정도의 위치에서 몇 년 남지 않은 퇴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기회를 놓쳤니 잡았니를 떠나 그냥 내가 못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커리어의 후반에 접어드니, 지난날의 선택에 아쉬움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때, 해외에서 계속 일하는 것을 택했다면,

그때, 지금은 열 배 이상 더 커진 그 회사의 이직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아는 형이 소개해준 완전히 새로운 직종을 시도해 봤더라면.


그때, 한 번쯤 질렀더라면.




예전 회사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몇 년 터울 선배가 있었다. 그다지 성실하지도 않고 똑똑하다고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 선배는 우리 회사에서 매니저가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십여 년 전 회사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받고 나가더니 작은 회사로 옮겨가 매니저가 되었고, 그런 뒤 세 번을 내리 이직하더니 지금은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얼마 전에는 TV 뉴스에도 나오더라.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할 때는 전혀 몰랐는데 그는 그렇게 큰 자리에 갈만한 포텐셜이 있었고, 내가 커리어에 대한 비전 없이 그저 성실하게만 일할 때 하향이직으로 기회를 찾고 결국 성공한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길을 택했다면 잘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만한 깜냥이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발을 잘못 디뎌 넘어졌더라도 수월히 일어설 수 있을 때 한 번 정도는 세게 질러봐도 좋았으리라 하는 후회가 든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단, 한 번쯤은 강을 거슬러 오르거나 자맥질이라도 해봤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든다.


난 다른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뻔히 보고서도, 발을 잘못 디디거나 계단이 부서져 밑으로 곤두박직할 까 두려워 계속 같은 층만 열심히 맴돌았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다섯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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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를 별도 표기한 이미지를 제외한 모든 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하였습니다.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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