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진로에서의 실패
사무실 내 방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상반기 인사발령에 따라 원치 않게 회사를 떠나게 된 선배 임원이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의 서울대 공대 석사 출신으로, 학과는 다르지만 동문이라고 날 챙겨주던 고마운 선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호들갑 떨지 않고 늘 담담했던 그는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깊은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전무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내 어깨를 말없이 두어 번 탁탁 치던 그는 “잘 있고… 최대한 오래 버티는 거야. 알지?”라고 짧은 인사를 남긴 채 금세 돌아섰다.
같이 술 마실 때는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를 하던 사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보여주지 않고 싶은 표정을 보여주게 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게 되는 법.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무척이나 짧았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아직 다음 직장을 잡지 못했다. 요즘은 대기업 임원이라도 퇴직 후 협력업체나 중소기업에 임원으로 옮겨가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시장에 나오는 대기업 임원들은 많아서일 것이다.
막내가 고등학생이라 돈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의 다음 커리어는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90년대 학번이다.
그 시절에는 대학입시에 있어 의대가 지금처럼 '절대 강자'는 아니었다. 그때도 가장 인기 있는 학과이긴 했지만, 지방에 있는 의대들이 SKY 대학 공대와 자연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대에서 중상위권 학과를 갈 정도면 다른 대학의 웬만한 의대는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내신을 포함한 내 대학 입시 성적은 의대에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울대 의대는 살짝 어려워 보였지만, 다른 의대는 무리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고민조차 하지 않고 서울대의 일반 학과를 택했다. 아예 다른 대학교의 의대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의 많은 실패담들은 사실, 회사원의 루트로 간 이 선택에서 시작된 셈이다.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커리어, 쌓지 못한 자산, 여러 번 병에 걸릴 만큼 과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금의 나는 모두 그때의 결정에서 비롯됐다.
물론, 의대에 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전공을 잘못 골랐거나 병원을 잘못 택했으면 지금의 루트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다. 자산을 지금보다 못 모았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스트레스에 괴로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위 의사 친구들의 삶을 보면, 일반 회사원들에 비해
젊었을 때는 누구나 고생한다. 회사원이나 의사나 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다.
조금 나이가 들면 대기업 회사원들도 연 1~2억을 버는 등 또래의 의사와 수익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나처럼 대기업 본부장쯤 되면 당장의 벌이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느낄 정도다.
하지만 차이는 40대 중후반부터 현격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회사원들은 그 나이쯤 되면 소수의 ‘임원이 되는 사람’과 대다수의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다. 임원이 되면 남들의 몇 배가 되는 실적 스트레스와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임원이 되지 못하고 50세가 넘어가면 직간접적으로 퇴직 압박을 받거나 연봉만 많이 잡아먹는 짐짝 같은 존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나처럼 운 좋게 승진의 사다리를 타고 오른 사람도 늘 불안하고 늘 두렵다. 내년 이맘때 내가 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을 가능성은 50% 안팎이라 생각한다. 나를 끌어주던 조직의 ‘라인’은 이미 다 끊어졌고 올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이걸 생각하면 지금의 자리와 연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반면, 의사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이를 때까지 일할 수 있고, 경력이 쌓이고 이름이 알려진 50대 이후 오히려 전성기를 보내기도 한다. 대학병원에서는 회사원들처럼 승진을 두고 사활을 걸기도 하지만, 그 싸움에서 실패하더라도 개업이라는 길이 있다. 회사원들이 커리어가 불안해지고 내년을 예측할 수 없을 시기에 접어들 때 의사들은 가장 안정적인 소득과 미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너무도 크다. 서두에 얘기한 이번에 퇴직한 전무님도 서울대 공대가 아니라 의대에 갔으면 50대 중반의 나이에 저런 쓸쓸한 뒷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대학과 학과를 결정할 때는 이런 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의사는 하루 종일 반복적인 진료나 하고 환자들 불평이나 신음소리만 들어야 하니 재미없을 것 같았다. 남자라면 (90년대니까 이런 표현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 멋진 회사에 가서 큰 조직을 움직이고, 사장은 아니더라도 임원쯤은 되어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짧은 시각이었다.
물론, 회사 생활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때로는 실패를 경험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성과를 낼 때나 승진했을 때의 성취감도 컸다. 이 책의 다른 챕터에서 얘기하겠지만 나는 외국에서 주재원 생활도 했고 외국인 보스를 모셔보기도, 외국인 부하를 데리고 있기도 하는 등 정말 색다른 경험도 했는데 이 역시 회사원의 길을 택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자산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런 경험이 없을까? 힘든 레지던트나 인턴 생활을 하면서 배운 삶의 교훈도 클 것이고, 전문의가 되었을 때나 개업할 때의 성취감도 넘치도록 클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전공이라면 삶과 죽음을 여러 번 접하며 일반인보다 훨씬 깊고 강렬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결국, 회사원이 얻는 경험이 절대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생애 총수익, 커리어 안정성, 삶의 스트레스 수준 이 모든 면에서 회사원이 더 열악한 길이 맞다.
"서울대도 붙은 내가 실패하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안정적인 의사 생활보다 박진감 넘치는 인생이 더 어울린다고 오해했고, 나라면 어디로 가든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이라 착각했다.
열아홉 살의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이후 대학을 다니고 이십 년 넘게 회사를 다니며 깨달은 건, 나는 별것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몇 가지 있지만 그만큼 못하는 것도 많은, 어디에나 있는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승진이나 성장도 내 재능이나 실력보다는, 내가 속한 조직의 상황과 보스가 누구인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운이 실력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던 순간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런 현실을 감안하면, 평범한 사람이 직장에서 끝까지 성공하고 안정적인 고수익을 오래 누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렇기에 운 좋게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던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의대를 선택했어야 했다.
물론 지금 학생들에게까지 '무조건 의대가 낫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점점 시장에서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고, 정책 변화에 따라 계속 지금처럼 안정적인 직업일 거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20년 뒤, 3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남들보다 크게 뛰어나고 별의별 운까지 따라줄 자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 나처럼 입시만 잘 치렀을 뿐인 평범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의대가 더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몰랐고,
인생을 완전히 가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택에서 나와 맞지 않는 결정을 했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네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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