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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름이 아닌, 직무를 택해야 했다

1부 - 진로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나는 개인 브랜드가 없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늘 워크홀릭 소리를 들을 만큼 열심히 일했으며, 연간 성과평가에서도 거의 매년 회사 최고 등급을 받을 정도로 일머리도 있는 편이지만 여태껏 내 이름 세 글자 앞에 붙일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지금은 운 좋게 돈도 제법 벌고 그럴듯한 명함도 있지만 회사 이름과 직급의 수식어를 떼면 난 그냥 40대 후반의 아저씨일 뿐이다. 당장 오늘 저녁에 대표님이 불러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아무런 대안이 없다. 그리고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올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교 4학년, 취업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취업준비생으로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연스레 이른바 ‘좋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들에 눈이 갔지만, 점차 '흙 속의 진주' 같은 회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조직문화가 빼어난 회사,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는 회사, 남들보다 먼저 유망 산업에 뛰어들어 미래가 밝은 회사, 정년퇴직을 담보하는 회사, 글로벌 기업을 능가할 수준의 연봉과 보너스를 챙겨주는 회사들까지. 왜 그간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좋은 회사들이 많았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이었다. 정보를 모으는 게 쉽진 않았지만,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경제 잡지를 사 읽고, 직원들의 싸이월드까지 찾아보며 실체를 파악해 보려고 애썼으며, 그 결과 몇몇 목표 회사를 추려내는 데 이르렀다. 정직한 경영은 기본으로, 직원들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철학이 서려 있는 회사들이었다. 그런 곳에서 일한다면 나도 더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이들 회사를 목표로 삼는 것과 그 회사들에 실제 입사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 자체가 열려야 했다. 당시 내 대학전공은 비교적 다양한 포지션에 지원 가능했기에 희망을 품고 채용 시즌을 기다렸다.




이윽고 가을이 되었고, 내 목표 회사, 이른바 '흙 속의 진주'들이 채용 공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해는 유독 불황이 심해서인지 채용 자체가 줄어들었고, 그나마 오픈된 몇 안 되는 포지션도 내 전공과는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목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운 좋게 두 곳에서 최종 합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그토록 바라던 목표 회사 중 한 곳에서 한참 늦게 채용공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 안엔 내 전공으로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이 하나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애매했다.


그 포지션이 ‘품질관리’였기 때문이다.


품질관리라니.

회사 경험이 없던 나도 QA(Quality Assurance)가 되었든 QC(Quality Control)가 되었든 품질 관련 업무는 잘해도 티 나지 않고 못하면 사방에서 욕먹는 업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주위에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회사, 직종, 직무에 다 발을 뻗치고 있는 전공이었지만 주위 선배 중 품질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찾지 못했고, 선배 동기 교수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말렸다.

무엇보다 대학 때 들어본 '품질관리' 수업은 특히나 재미가 없었다. 직무의 유망함을 떠나,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거나 내게 잘 맞는 업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난 다른 두 회사의 ‘연구기획’과 '전략기획' 직무에 합격을 한 상태였고 이 두 직무는 품질관리보다는 더 유망하게 여겨졌기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회사'를 보고 갈 것인가, 아니면 '직무'를 보고 갈 것인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답을 알고 있다.


직무를 보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회사의 이름이 주는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좋은 회사’에 가고 싶다는 염원이 너무 강했다.

앞서의 글과도 연결이 되지만 특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도 거셌다.


결국 나는, 입사 날짜만 기다리던 다른 대기업 인사팀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고, 가장 늦게 채용 공고를 띄운 회사의 전형을 잘 통과하여 꿈에 그리던 흙 속의 진주를 마주하게 되었다.




고심 끝에 입사한 그 회사는,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좋은 곳이었다.

회사는 젊고 열정이 넘쳤으며, 뛰어난 CEO의 리더십 하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복리후생도 훌륭했다. 입사 전 들었던 것보다 보너스도 많았고 휴가도 많았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갖 정보를 거리낌 없이 공유했고, 내 눈에는 굉장히 많은 액수를 사회에 기부하고 온갖 봉사 활동에 열렬히 참여하는 등 정말 착한 회사이기도 했다.

사장님 개인도 카리스마가 넘쳐흐른 나머지 직원들도 그를 너무도 존경해 지방 사업장에 방문하는 날에는 이미 제출한 개인 휴가까지 취소하고 그를 보러 기다릴 정도였다

이 회사에 대해 입사 전 들은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은 있었지만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회사를 '진주'로 만든 CEO는 그곳에 머물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었다.

내가 입사한 지 몇 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그는 더 큰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훌쩍 떠나버렸고, 강력한 리더를 잃은 회사는 그때부터 멋진 모습들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나도 선택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품질관리는 입사 전 예상했던 대로 어려운 일이었다.

생산 현장에서는 야간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불량이 발생했으니 빨리 와서 확인해라’라는

전화가 왔고, 상부에서는 매일같이 불량률과 소비자 컴플레인을 해결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가끔 커다란 품질 문제가 발생할 때면 내 잘못이 아니었어도 대역죄인이라도 된 양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고,

밤에 전화기가 울리면 또 어딘가 문제가 터졌나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 것이 부지기수였다.

다른 회사의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았는데, 어느 회사든 품질 업무는 다 비슷했다. 일의 고단함은 둘째 치더라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받기 어려운 직무였다.


다행히 난 수년 뒤 우연찮게 참여하게 된, 품질과는 상관이 없는 큰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그걸 계기로 다른 직무로 옮길 수 있었지만 이 마저도 쉬운 길은 아니었다.

축구로 치자면, 수비수 출신은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옮길 수는 있지만 갑자기 윙 포워드나 스트라이커로 전환하긴 어려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품질관리는 벗어났지만 단박에 완전히 다른 업무로 가진 못하고 생산관리, 제품개선과 같은 인접업무로의 이동을 거듭하다 마케팅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좀 더 이직에 유리한 유망한 직무로 오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번 방향을 틀면서 먼 길을 돌다 보니, 쉰이 다 되도록 내 이름 앞에 내세울 개인 브랜드 하나 만들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브랜딩을 뒷받침할 충분한 경력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길인 줄 알았으면 중간에 빨리 다른 길로 갈아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입사 후 처음 몇 년은 카리스마 있는 CEO 덕분에 장밋빛 꿈을 품느라 시기를 놓쳤고, 그 이후에는 다른 직무로 신입 입사하기엔 나이가 많았으며, 다른 회사 품질관리로 가기에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지라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처음부터 좀 더 전망 있고 여러 회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직무로 시작했다면 이직도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별의별 케이스를 보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커리어가 어떻게 피고 지는지를 지켜보게 되는데, 그 관찰에서 얻은 교훈도 동일하다.


회사 이름보다는 직무를 봐야 한다.


괜찮은 직무를 가지고 있으면 회사가 마음에 안 들 때 박차고 나가기도 쉽고, 회사가 망해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경력에 비례해서 자기 브랜드를 쌓기에도 훨씬 유리하다. 물론 수많은 노력과 시간, 운이 필요하지만 처음부터 유망한 직무로 시작했다면, 즉 첫 단추를 잘 뀄다면 그다음은 한결 수월해진다. ‘10년 경력의 마케터’가 ‘10년 경력의 품질관리자'나 '생산관리자'보다 선택지가 많은 건 링크드인 채용 공고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유망하지 않더라도 자기와 잘 맞는 직무를 선택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30년을 이어갈 이 긴 직장 생활을 좀 더 즐기면서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쉽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 시절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내 첫 회사에 아직도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난, 좋은 회사를 택한 값으로 유망하지도 않고 애정도 없는 직무를 선택했고, 그 영수증은 나를, 길고 험한 커리어의 자갈길로 이끌었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두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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