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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1부 - 진로에서의 실패

by 박기주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역삼동에 위치한 S 모 대기업에서 인턴을 했다.

형식상 인턴이었지만, 정식 채용 절차를 그대로 따라 합격한 자리였고, 방학 동안 무사히 회사만 다녀내면 졸업 후 재시험이나 면접 없이 그룹 계열사 중 원하는 곳으로 입사할 수 있는 취업준비생에게는 굉장히 좋은 제도였다. (나는 그 제도의 1기 수료생이었고, 회사 입장에선 꽤 불리한 조건이었는지 오래가지 않아 폐지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게 그 인턴 경험은 독이 되었다.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출근하던 매일 아침, 이른바 ‘푸시맨’이 사람을 밀어 넣는 지옥철을 타야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에 지하철에서 내릴 때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고, 혹여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의 젖은 우산과 축축한 옷, 가방에 치여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사무실에서의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푸시맨이 직원들을 어딘가로 끊임없이 밀어대는 것 같았다. 회사 자체가 하나의 지옥철에 다름 아니었다.


지옥철을 타고 지옥철에 들어간 후 다시 지옥철을 타고 퇴근하는 삶


그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나는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에 진절머리를 느꼈고, 다음 해 겨울, 내 인생을 바꿔버린, 아니 지금의 실패를 불러온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서울을 떠나자.”



2호선 지옥철 같은 삶보다는, 비둘기호 같은 삶을 살자.

콩나물시루 안의 대가리가 되느니, 한적한 들판 한가운데 느티나무로 살아가자.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결단이었다.


나를 느티나무로 살게 해 줄 것만 같은 착한 회사와, 그 회사의 지방 발령 채용 공고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스펙이 나쁘지 않았던 터라 별문제 없이 최종 합격을 거머쥐었다.

그리고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의 한 광역시, 그것도 시내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외곽으로 이사하여 그토록 꿈꾸던 ‘남 다른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문화생활도 없고 친구도 없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서울에서 취업한 대학 친구들이 푸시맨에 밀려 출근할 때,
나는 쨍쨍한 색깔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예쁘장한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출근했다.

비슷한 또래의 직장인들이 야근을 생각할 시간이면,
5시도 되기 전에 정시 퇴근한 나는 한적한 강가 옆 야트막한 언덕에 앉아

뉘엿뉘엿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농담 같지만, 진짜다.

그때 본 불타는 노을과

노을빛을 한껏 받아들여 빨갛게 타오르던 은색 하모니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서울에 붙어 있고 서울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다.

낙향은 ‘이 길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해도 늦지 않았다.

처음에는 남들 가는 길, 이른바 ‘메인 루트’를 따라가다가

더 철이 들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 후에 뛰쳐나왔어도 됐다.

어디로 달릴지, 어디서 멈출지, 언제 전력질주해야 할지

인생에 관한 좀 더 명확한 답이 생긴 후에 움직였어도 충분했다.


경쟁이 싫고, 치이는 삶이 싫고,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 메인 루트에서 너무 빨리 벗어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처음엔 별거 아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


친구들이 수많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할 때
나는 자그마한 우물 안에서 대단치 않은 일들에 허우적거렸고,

한 명씩 몸값을 올리며 이직할 때
나는 회사가 정해준 짜디짠 연봉 인상률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억대 연봉을 찍는 동기들이 등장할 무렵,
나는 지방의 낮은 물가를 위안 삼아 분을 삭여야 했고,

또래들이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고 자산을 불리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 시기도 놓쳐버렸다.

무엇보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새로운 만남, 도전, 자극의 기회들을
서울을 떠남으로써 상당수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정말 많은 길을 돌고 돌아 겨우 여기에 돌아왔다.

비록 대기업 본부장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은 있지만 서울에 집을 구하지 못해

멀리 지방을 오가며 주말부부를 하고 있으며,

회사 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트랙 레코드나 경험도 부족해 늘 좌불안석에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가장 똑똑했을 때, 내가 가장 건강했을 때, 내가 가장 열정적이었을 때 메인 루트에서 벗어나 허투루 보낸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


가끔, 호기롭게 “나는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 거야”하고 장담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곤 한다.
나는 다르다, 나는 특별하다는 자신감이 후광처럼 뻗어 나와, 일견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멋진 친구들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건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
꼰대 소리 듣기 싫고 무엇보다 그들이 꼭 나처럼 실패하리란 보장도 없으니까.


하지만 꼭 그런 순간이면,
내 눈앞에 어른거리며 나타나는, 젊었을 때의 내가 있다.

“나는 다르게 살 거야. 두고 보라고!”라고 소리친 후 멋쩍은지 싱긋 코웃음 치는 스물여섯의 내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젊었던 내가 빚어낸 지금의 나이 든 내게 타이르듯 말해본다.


나는 서울에 있어야 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실패한 첫 번째 이유다.


이미지: Vecteezy 제공 (무료 라이선스, no attribution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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