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서론
나는 40대 후반의 나이로, 잘 알려진 대기업의 마케팅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몇 천억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으며 회사로부터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출근하면 "본부장님"이라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는 부하 직원들이 있고, 상사로부터도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누군가에게는 '성공한 직장인'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실패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내가 정의하는 실패는 사업이 망해 빚쟁이에게 쫓기거나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앉는 극단적인 상황에 국한되진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 실패이다.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라는 자조가 흘러나온다면,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질질 끌려가는 삶을 살고 있다면, 회사에서의 직급이나 자산 총액과는 상관없이 실패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분명 실패했다. 지금의 내 모습은, 특히 커리어 관리에 있어서는 내가 꿈꿨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 '나는 왜 실패했는가'는 내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실패의 이유를 기록한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 법한 파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거나 곧 겪을 수도 있는 현실적인 실패의 이야기이다.
주위를 보면, 성공의 이야기는 넘쳐난다.
재테크로 큰 부자가 된 사람,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회사를 일으킨 창업자, 무시받다가 스타가 된 연구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성공들이 "너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성공이라는 목적지가 남의 말대로 따라 하면 누구나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자기 계발서를 수십 권은 읽은 나와 당신도 진작에 성공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수백만에 달하는 성공학 유튜브의 조회수만큼 성공한 사람들이 더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공이란 건 공식대로 따라 한다고 누구나 답을 얻을 수 있는, 뻔한 기출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 건 '성공의 이야기'가 아닌 '실패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성공의 공식은 그대로 따라 해도 같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지만, 실패의 공식은 마치 함정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처럼 적어도 우리를 부러뜨리고 넘어뜨리는 사고는 피하게 해 줄 테니 말이다.
내 나이를 생각할 때, 또 회사에서의 내 입지를 감안할 때 대기업에서의 내 커리어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다음 달에 끝날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역전을 만들 수도,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실패한 이유가 나보다 늦게 이 길을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유용한 오답노트로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와 비슷한 나이대나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른다면 조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자기 고백은 아니다. 난 연령대나 직종, 직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실패학 개론’을 쓰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인생 전체를 조망하며 실패의 이유를 뽑은 후 이를 총 3부에 걸쳐 정리하였다.
1부에서는 잘못된 진로 선택을,
2부에서는 일상에서의 실패를,
그리고 3부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의 실패를 다룬다.
각 부마다 다섯 가지 실패의 이유가 담겨 있으며, 결론에서는 이 전체를 아우르는 마지막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내가 겪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이 책이 실패를 피하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며 서론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