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ge - 덧붙이는 이야기
며칠 만에 해당 글의 조회수가 4만을 훌쩍 넘었고, 제 누추한 브런치의 구독자도 크게 증가했으며, 예전 글들의 조회수까지 덩달아 10배 넘게 올랐습니다. 스마트폰의 알림을 꺼놔야 했을 만큼 정신없던 주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글이 많은 관심을 받은 건 결국 자극적인 제목과 주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읽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졸지에 '어그로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막 연 지 한 달 남짓 된 제 브런치는 하루 조회수 10도 안 되는 날이 허다할 만큼 한산한 곳이라 마음 편히 쓴 글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글이 확산되면서 '의도적으로 논란을 유도하고자 미끼를 던진 사람'이 된 듯하여 착잡하기까지 했습니다.
글에 대한 비판도 뼈아팠습니다. 날 선 댓글이 달렸고 페이스북 등지에서는 제 글을 공유하며 비판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직 의사분들이나 의대생 입장에선 “이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데,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하다니. 당신이 뭘 안다고?” 하는 생각이 드실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자연대나 공대를 선택해 잘 살아가시는 분들에겐, 본인의 선택이 평가절하된 것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지요.
저는 의사의 길을 가볍게 본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해 의대를 갔어야 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구조적인 이유로 점점 더 불안해지고 차츰 더 두려워지는 40대 후반의 직장인으로서 “이 길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되돌아보며 씁쓸한 회한을 담아본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비슷한 선택을 해서 후회하는 분들과 공감하고 싶었고, 같은 갈림길 앞에 선 후배님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의사가 최고다”를 외친 게 아니라, 동문을 포함한 주위 의사들의 삶을 참고로 하여 적은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글을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나는 왜 실패했는가’ 연재는 철저하게 제 개인적인 후회와 아쉬움을 다루고 있을 뿐 다른 분들에게 이런 선택이 맞다 저런 선택은 틀리다 판단하고 설득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기장에 쓰고 마는 게 아닌 공개를 하는 글인 이상 오해와 손가락질이 따른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겠지만, 읽는 사람 중 일부가 제 글에 불쾌함을 느낀다는 것은 저로서는 삼키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댓글이나 개별 메일로 저에게 진로를 물어보신 분도 몇 분 계셨는데, 제가 대학을 선택할 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지라 요즘의 입시에 대해, 혹은 지금이라도 진로를 바꿔야 되는지 의견을 말씀드리기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20년, 30년 뒤에 세상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데 의사가 맞다 교수가 맞다 회사원이 맞다 제가 어떻게 감히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혹은 몇 년 뒤 제 자식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떠올려 보니, 조금 생각이 정리되더군요. 참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만,
지난 글에도 적긴 했지만 대학입시 때 저는 스스로를 깊이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며,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불행한지를 좀 더 깊이 고민한 후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그게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다들 가는 길에 묻어갔던 것이죠.
대학 입시 때 만약 서울대 일반학과가 아니라 의대를 가는 게 지금처럼 대세였다면, 저는 분명 의대를 갔을 것입니다. 입시뿐만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수학’을 굉장히 싫어했고 성적도 안 좋았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문학’과 ‘국어’, ‘한문’이었고 성적도 그쪽이 항상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2학년 올라갈 때 이과를 갔죠. 당시 저희 학교는 3분의 2 이상이 이과를 가는 분위기였는데, 친구들이 다들 이과로 가니 같이 얹혀간 것입니다.
문과가 낫냐 이과가 낫냐를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좀 더 이해하고, 그게 잘 안 되면 주위에 물어라도 본 뒤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거듭되면서 자꾸 맞지 않는 길을 갔고, 그게 누차 반복되면서 다른 연재글에 적은 것처럼 여러 오판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이 요약이 되겠네요.
물론 그 '나'라는 것이 계속 변할 수 있고, 선택 이후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결국은 이 역시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었겠지만요. (제 글 "서울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가 이런 류의 실패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본의 아니게 어그로를 끈 것을 반성하며, 더불어 제 지난 글들을 다 읽어봤다, 도움이 되었다 말씀해 주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내가 왜 브런치 연재를 시작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지?"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요, 이분들 댓글 덕분에 좀 더 써보자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표지이미지는 Vecteezy.com에서 구입했습니다. No attribution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