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깨세요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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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괜찮아”, “안 해도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도서 검색을 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출판 시장은 그야말로 “괜찮아 열풍”에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그게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삐딱해져 버린 우울증 환자이자 염세주의자인 저는 그 말이 그렇게 꼴 보기 싫더군요. 뭐랄까요, 그냥 세상 모든 어려움을 덮어놓고 괜찮다고 말하는 게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쉬워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런 것 있잖아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의 문제에 깊이 들어가서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함께 나누려 하기보다 “괜찮다, 괜찮아”라며 입으로 몇 번 위로해 주고 제 할 일 다 했다는 듯 구는 경우요. 또 전혀 괜찮지 않고, 괜찮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이들을 위한다며 건네는 “괜찮아”라는 끝없이 가볍고, 무책임한 언어의 향연들 말입니다. 덮어놓고 내뱉는 "괜찮다"라는 말, 공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너는 할 수 있어”, “꿈은 이루어진다”고요.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세상에는 별의별 노력을 다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것을요. 꿈을 꾸고 이루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수는 꿈을 꾸지도 않고, 꿈을 꿀 수도 없으며, 꿈을 이루지 못 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요. 모두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 모두가 그것을 이룰 수 없는 것이 분명한 것을요. 꿈꾸는 것이 좋고, 필요한 사람들은 꿈을 꾸면 됩니다. 특별한 꿈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은 꿈꾸지 않은 채 살아가면 됩니다.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꿈도 없는 것 같아”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별 꿈 없이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가졌던 모든 분들이 그 꿈을 이루며 살아오지도 않았습니다. “행복한 가정”, 어떻습니까? 모두의 꿈이었습니까? 그래서 본인들은 모두 그 꿈을 이루셨나요? 그 꿈은 정말 당신의 꿈이었습니까? 당신 자신으로부터 온 꿈이 확실합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꿈을 갖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잘 잊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꿈꾸지 않는 자들을 또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버립니다.


꿈은 곧 희망이고, 희망이 현실화되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만 합니다. 사회는 꿈을 꾸라고, 꿈을 가지라고, 희망을 품으라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종용합니다. 사회는 꿈을 꾸지 않거나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을 패배주의자라고, 게으른 자라고 폄하합니다. 희망을 품으라고만 하니 절망이 늪처럼 펼쳐지는 겁니다. 희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절망이라는 개념조차 설자리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절망할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하면 됩니다.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면 안 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지 않으면 안 찾으면 되고, 찾았다고 해서 모두 다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꿈은 깨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덮어놓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응원하기보다는 정말 그 일을 원하는 것인지 묻고, 확인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에서 위험과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경우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내어 옆에 함께 앉아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할 수 있다"라고 말들을 하는데, 정작 그 일을 해내지 못 한 많은 사람들은 길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안 잃어도 될 길이었는데,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겁니다. 병들게 하는 겁니다. 좌절하게 하는 겁니다. 그 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다른 일을 또 찾아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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