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일상은, 삶은, 인생은 “행복”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상태일 때 “행복”한거라고 하던가요? 몇 가지 명확한 답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 명확한 답은 내 탄생과는 무관합니다. 나는 그냥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 살고 있는데, “이런저런 것이 행복이니 추구하라”는 주문이 쏟아져 내리는 겁니다.
장애가 없이 태어나야 하고, 죽을 때까지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어서는 안 되고, 가정은 화목해야 하며, 공부를 잘해서 인문고나 특목고를 나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다녀야 하며, 적당한 시기에 반드시 이성과 연애 및 결혼을 해야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며, 아이들을 기똥차게 잘 키워내야 하며,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부를 성취해야 하고, 노년에 걱정 없이 살기 원한다면 이만큼의 부를 이루어야 하고, 최대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며, 요양원에서 죽지 말고 집에서 자다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장례식장에 사람들도 많이 모여야겠지요? 3일장이 좋겠고요. 화장을 한 후엔 쾌적한 납골당,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쉽도록 비싸더라도 좋은 단에 안치되면 좋지요. 어떤가요? “행복”한 삶을 살다가 떠날 자신이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이미 “행복” 하게 살고 계신가요? 저는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 모든 것을 이루어 “행복” 하게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가끔 불가능한 꿈을 갖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좋은 시도였습니다. 성공을 했다면,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탄생 이전부터 제안 혹은 강요되어 온 “행복”의 내용은 내가 기획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린, 정의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추구해야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성공”처럼 “행복” 역시 다시 써야 합니다.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이 기본값인가요? 왜 그런가요? 그들의 “행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행복” 하지 않아 “불행”해 합니까? 내 것도 아닌 것을 왜 내 것이라 착각하며 살면서 불행해 하는 거죠? “행복”이 기본값인 것을 의심 없이, 덮어놓고 받아들여 나의 것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불행이 기본값이라는 거냐?”고요. 네,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아닌 불행이 기본값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기본값으로 두고 살아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행복”을 정의하여 온 국민에게 태어나기도 전부터 세뇌를 해대는데, “행복”을 지향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을 지경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기본값으로 두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중 몇 개 이루며 사는 과정에서 그 불가능성을 인식하여 의식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고, 애초에 그런 “행복”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행복”이나 “불행”을 고정된 기본값으로 두지 않습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저는 그저 그냥 그런 “순간”이, 그런 “순간의 연속”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존의 “행복” 개념은 미래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느낍니다. 저것을 이루어야, 가져야, 경험해야 “행복” 하니 지금, 오늘, 현재 다가올 그날을 위해 노력, 또 노력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지금, 현재, 오늘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은 나에게 “너, 지금 행복하니?”, “지금 이 순간, 네 마음이 평온하다면 그게 행복이야”라 묻고 말하지 않아요. 국가와 민족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고진감래(苦盡甘來)”와 같은 말을 더 좋아합니다. 둘 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집중하라는 얘깁니다. “지금 네가 어리니까 아픈 거야. 그 나이엔 다 아파. 나도 아팠어. 나이 들어봐. 다 좋아진다”, “지금 너무 쓴맛이 나지? 그래도 꾹 참아봐. 언젠가는 단 맛이 날 테니까” 누군가들에겐 정말이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립니다.
저따위 소리에 현혹되어 살다 보면 오늘을 놓치게 되어 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 불행하게 살라는 소리 아닙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들 하지만 내일, 태양이 안 뜰 수도 있습니다. 뜰 수도 있지 않느냐고요? 물론입니다. 뜰 수 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내일, 태양은 뜹니다. “행복”에서 벗어나면 좋겠습니다. 내 힘으로, 행복의 의미를 다시 써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내일의 “행복”이 아닌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행불행을 뛰어넘어 그저 그냥 그런 순간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그냥 그런 순간의 연속이 삶이라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