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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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나 중앙일보를 읽는 사람들이 있으면 한겨레신문이나 프레시안을 읽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조선일보만 읽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지만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100명이면 100명, 1,000명이면 1,000명의 사람들이 가진 색깔과 개성이 다 다른데 그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가치관과 신념만을 가지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에요. 역사적으로 그런 순간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하니까요.


물론 한시절,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어요. 전범 국가 일본이, 독일의 히틀러가, 북한의 김일성 일가가, 남한의 박정희와 전두환이 있었죠. 그들은 폭력으로 사람들을 지배했습니다. 인간의 개성을 말살하고 사적/공적 영역을 통제했습니다.


그런 사회의 주요 가치 중 하나는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입니다.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획일성을 강요하는 사회는 폭력 사회입니다. 개성이 말살된 사회는 차이를 이유로 차별을 생산하고,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그 안에서 개인은 억압당하고, 시들어가고, 죽는 거죠.


“지금 세상은 독재자가 독재하는 시대가 아니잖아!”라 반문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나는 앞선 글들에서 지금도 우리 사회는 획일성을 주요 가치로 삼아 굴러가고 있고, 그 안에서 다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차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고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독재시기/폭력이 지배하는 시기에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었고, 획일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그런 의지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수였지만 그들에 의해 이 세상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 덕분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폭력에 지배받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현재는 돈이 곧 권력이고, “이래야 정상이고, 저런 것은 비정상이다”라는 획일화된 삶의 기준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지만 그런 획일화된 강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이기를 원한다면, 그런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소수자 감수성을 함양해야 합니다. 소수자 감수성은 주어진 이념과 가치들에 관해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 길러집니다. 그리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에 앞서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식화도 방법이고, 내 힘든 처지와 고통을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가정폭력과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모든 환경과 과정이 내 시선과 사고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산다고 삐딱한 시선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운 좋게 나는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삐딱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정말 운이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득권자의 시선이 아닌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다 떠날 수 있음에 기쁨을 느낍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를 위해 애쓰는 삶을 살 수 있었음에 만족합니다. 가정 형편과 사회 형편 때문에 작고 큰 시련들을 겪어 힘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삐딱한 사고방식과 시선을 탑재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기에 싫지만은 않습니다.


소수자의 시선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수자의 시선은 결국 타인에게도 향하기 마련입니다. 나와 타인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차별받는 세상에서 벗어나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에 기여하게 합니다. 소위 “진보”라고 하는 것에 관심이 있고, 작은 기여라도 하기를 원한다면 소수자 감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나도 너랑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지만 삐딱한 시선이나 소수자 감수성 같은 거 탑재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이유로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삐딱한 시선에 머물게 된, 소위 “진보”라는 것에 관심이 생긴 소수만 그리 살면 됩니다. 이건 당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소수집단은 소수(少數)였고, 이고, 일 거니까요.


“나도 너랑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왔지만, 나는 그럴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네. 모두가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내가 기운이 없어 오늘 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운 마당에 무슨 사회적 진보를 생각합니까. 기운 있는 소수만 그리 살면 됩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굴러왔고, 굴러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럴 필요도, 저럴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 생긴 대로 살다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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