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정말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운가요? 왜죠? 왜 사람과 꽃을 대조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그냥 “꽃도 아름답고, 사람도 아름다워”라 말하는 게 낫지 않아요? 그리고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거죠? 설마, 세상 모든 사람들이 꽃 보다 아름답다는 건 아니겠죠?


제 귀엔 이렇게 들려요. “꽃 따위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어”, “이 세상 만물 중 사람이 최고야”라는 말로요. 도대체 어떤 열등감이 있기에 죄 없는 꽃을 들이밀면서 “우리가 쟤네보다 더 아름다워”라고 말하는지, 그게 왜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지 참 어이가 없어요. 사실 이렇게 쉽게, 아무 생각 없이 “식물보다 사람이 우월하다"라고 하는 기괴한 논리, 주장을 접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먹이사슬 운운하면서 인간을 최상위 포식자로 위치시키는 것도 그렇고, 근대와 현대의 일부 철학자들 주장하는 “인간 vs 자연”, “인간 vs 동물”, “남성 vs 여성”, “비장애 vs 장애”, “정상 vs 비정상” 등이 좋은 예죠.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차이”를 중심으로 생겨납니다. “비교”와 달리 “대조”를 한다는 것은 곧 “차이”를 염두에 두는 일이지요.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차이는 즉각 차별적인 사고로 이어집니다. “그냥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뭔 차별을 한다는 거냐?” 따지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문장 안에 “보다”라는 표현이 보이잖아요. “보다”라는 것은 이 수준보다 저 수준이 보다 더 높다 혹은 낮다를 드러내는 말이잖아요. 대조를 하면서 우월감이나 우월성을 주장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문장이랍니다.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어쨌든 꽃이 아름다워 봐야 사람이 아름다운 것만 못하다는 말이 맞잖아요.


“인간 vs 자연”, “인간 vs 동물”, “남성 vs 여성”, “비장애 vs 장애”, “정상 vs 비정상”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해.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어”, 서양 근대 철학자들이 기획하고 주창했던 말입니다. “인간은 동물보다 강해. 따라서 우리가 동물을 지배하는 건 당연한 거야”, “여성은 남성과 이렇게 달라. 예컨대,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작지. 그래서 우리,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거지”, “장애가 있는 건,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야. 장애인들은 시설에 가둬두어 비장애인인 우리들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너무나도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보는 겁니다. 그것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부각시키면서 말이지요. “이런 차이가 있으니 우리 서로 이해하면서 잘 살아보아”라고 말하기 위해 이런 차이들을 부각시킨 게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차이가 있어서 우리가 상대보다 우위에 서 있는 거고, 우위에 서 있는 우리가 상대방을 지배하고, 소유하고, 차별하고, 억압하고, 학대해도 괜찮다는 얘깁니다. 차이를 부각시켜 대조하는 것은 차별을 낳는 일입니다. 차별은 당연히 폭력을 낳고, 폭력을 정당화하지요.


소위 “동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생각해 보면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동물”이라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 그저 “움직이는 물체”를 뜻해요. 소나 닭만 움직이는 건 아니죠. 인간 역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 역시 “동물”입니다. 따라서 “인간 vs 동물”이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입니다. “인간동물 vs 비인간동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자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비인간동물에게는 인간동물에게 있는 이성이 없다며,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했습니다. 서양의 근대 철학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어요. 그들도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차이점에 큰 관심이 있었어요. 대표적으로 프랑스인인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있는데요, 그는 “이성”에 관심이 많았어요. 데카르트는 이성이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로지 인간에게만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고, 온 천지 철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어요. 그는 이성이 있을 리 만무한 존재들인 비인간동물을 인간동물이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어요.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차이 중 하나로 “이성”을 언급했습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무엇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인간이 안 답니까? 무엇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가 얼마나 논쟁적인 주제인데요, 무엇이 진리인지 아닌지가 얼마나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인데요! 무엇이 진리인지 알 길이 없는 현실에서,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이성이라 부르고, 이성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고, 인간이 닭보다 똑똑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주장은 결국 인간동물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겁니다. 인간을 주체로 삼아 자연을 대상화(타자화) 하고,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해서 정신을 육체보다 우월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사이의 차이점을 찾아내려고 했던 건 모두 상대 존재들을 온전히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야 한다면서 자연을 황폐화시키고,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고귀한 노동인 양 굴면서 육체노동자를 무시하고, 여전히 인간동물이 최상위 포식자라며 돼지, 소, 닭, 도미, 광어, 연어는 인간동물의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차이를 찾아 부각시키는 것은 순수한 사고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차이는 대상을 억압하기 위한 이유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웃기지 않아요? 이런저런 차이가 있어서 지배해도 좋다고 하고는 인류의 영생을 위해 자행하는 동물실험에서는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을 동일시해요. 필요에 따라서 비인간동물의 정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소수집단인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인식은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과 같은 소수집단을 억압하는 방식과 같아요. 차이를 발견하고자 애쓰고, 기득권자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차별과 억압의 이유로 삼는 거죠. 정말이지 꼴 보기 싫습니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라니요!


경기도 고양시는 1997년 개최를 시작으로 2024년 현재까지 열여섯 번의 국제 꽃 박람회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고양시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일 겁니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고양시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고, 행사 규모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고양시 사람들은 꽃에 참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꽃 덕분에 고양시민 좋을 일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경기도 고양시의 슬로건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입니다. 참으로 경우 없는 슬로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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