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동물의 뛰어난 방어기제 작동 능력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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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차이가 없다는 건가?”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같은 인간동물 끼리도 셀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법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더라도 그 차이가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 둘은 그렇게, 그런 점들이 다를 뿐입니다.


한동안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간의 차이점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서양의 사상가들이 인간동물의 이성을 강조하고, 인간동물이 가졌다는 이성이야말로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간의 중요한 차이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동의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생각 끝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능력이 하나 있기는 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인간동물의 뛰어난 방어기제 작동 능력이다!’


인간동물이라면 대체로 가진다는 “이성”을 생각하면 조금 웃깁니다. 사물과 세상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이 굴러가는 법칙과 그 법칙의 원리를 알 수 있고, 사물과 현상이 내포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성”이라는 것인데, 인간동물에게 그런 아름다운 “이성”이 정말 있다면 대체 어떻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이성”이 있는 인간동물들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 학대, 폭력, 살인은 다 뭐란 말인가요. “돈에 미쳐있는” 이 현실과 “이성” 사이에는 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요.


그보다 “인간동물의 뛰어난 방어기제 작동 능력”이야말로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방어기제는 인간동물이 어떤 혼란, 불안, 고통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발휘되는 것들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그것으로부터 비켜나거나 벗어나게 하는 심리적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어기제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무관심, 외면, 무시, 절연, 부정, 회피, 격리, 분리, 이분화, 대상화, 타자화, 몰개성화, 정당화, 합리화, 망각, 해리 등입니다. 인간동물이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면 “멀쩡하게” 살아나갈 수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멀쩡할 수 없는 세상이 또 멀쩡할 리는 없고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는 겁니다.


인간동물은 자신의 심리와 정서를 어지럽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려고 합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벌어진 어려운 일들과 끔찍한 일들을 하나하나 온전히 기억하며 살아나가는 것 대신에 마치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여기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리고, 그 일은 어쩔 수 없이 벌어졌던 일이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마련이지요. 방어기제는 그렇게 인간동물이 멀쩡하게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게 돕는 능력입니다.


물론 비인간동물에게도 이런 방어기제 작동 능력이 있을 겁니다. 저와 함께 생활했던 강아지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강아지들도 싫고, 무서운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을 향해 격하게 짖는 다른 강아지가 있을 경우, 대면해서 싸우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저 개가 짖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리는 경우도 아주 많았습니다. “외면,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저는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에 비해 “뛰어난 방어기제 작동 능력”을 가지고 있고, 발휘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축과정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고, 의지만 있다면 관련 정보들을 찾아 읽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축의 전 과정을 보고, 늘 인지하면서 사는 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고, 돼지, 소, 닭 등의 수많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사육, 살생, 도축의 전 과정을 늘 느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결코 돼지 껍질, 소갈비, 양념치킨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이웃들, 친구들,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을 내 일처럼 깊이 나누며 살 수 없습니다. 그 모든 타인의 불행을 마치 나의 것인 양 이고 지고 산다면 모두가 불행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걸 정말 잘 알고 있지만, 매일, 매 순간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사실, 현실, 불안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절연하고, 부정하고, 회피하고, 잊고, 분리하지 않으면 우린 모두 미쳐버릴 것입니다.


방어기제 작동 능력, 좋게만 사용하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문제는 이러한 방어기제들을 적당한 수준에서만 사용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적당한 관심이 필요한 상황에까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해당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고, 외면하며, 자신의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분리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를 자신과 분리시키면서 대상화하고, 타자화하고, 몰개성화하면서 극악한 반응을 쏟아내기까지 합니다. 예컨대 죽은 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살아있는 희생자들을 희화화, 악마화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살이 있는 생명체라는 이유로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이유로 채식이나 비육식을 선택한 자들을 향해 “나는 벼가 불쌍해서 쌀밥을 먹을 수가 없어, 크크크”라며 그들의 선택을 비하하는 행태는 극악합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향해 “그러게 왜 그런데 가서 술을 처마시냐?”라며 비난하는 행태는 극악합니다. 세월호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에 대한, 자살한 전 대통령에 대한 극악한 사람들의 극악한 행태에 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자기성찰 없이 방어기제만 주야장천 돌려대는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마치 그런 일들은 자신에게 혹은 자신의 가족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피해 상황과 피해자들을 자신과 완벽하게 분리, 이분화하고 피해자들을 대상화, 타자화하면서 폭언을 퍼부어대는 것이지요. 그들은 인간동물이 지닌 최고의 능력인 방어기제 작동능력만 덮어놓고 써대는, 결국 타인과 이 세상에 해로운 존재들이 되고 맙니다. 그들은 마치 늙고, 병들고, 죽는 일 따위는 자신들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이 집값 운운하면서 마을에 들어서는 요양원, 실버타운, 화장터, 납골당 건립을 결사반대하고 나섭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동물의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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