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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김수진 Nov 16. 2024

오늘보다 나은 내일?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기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선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천국에 가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은 지옥에 간다는 얘기입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지만, 지옥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바로 여기, 이 땅이, 지구가 지옥인 것 같습니다. 이 땅이 지옥이 아니라면 이토록 불행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 성폭력, 결혼매매, 성매수, 아동학대, 노인학대, 계급과 계층 간의 불평등, 국가 폭력과 살해, 사회적 타살, 동물학대, 소수자 차별, 외모 차별, 나이 차별 등 우리는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차별과 폭력에 상처 입고, 견디고, 맞서 온 모든 이들이 이 세상을 지옥이라 여기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이곳을 지옥이라 여깁니다. 


폭력이니 매매니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문제로 시선을 옮겨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 좁고 열악한 취업문 앞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 가난해서 아파도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떠나가는 사람들, 과로사로 사라진 노동자들, 고독사하는 청년들과 노인들 등 예를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지옥인 사람들에게 건네는 혹은 던지는 “괜찮아”, “나아질 거야”, “희망을 가져”, “긍정적인 사고가 너와 환경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하면 된다” 등과 같은 아름답기만 한 말들은 그냥 아름답기만 합니다. 전혀 괜찮지 않아서 매일 죽고만 싶은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나아지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며 살아왔을 겁니다. 사람은 해도 해도 안 될 때, 더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며 깊이 좌절할 때 세상을 지옥이라 느낍니다. 그런 그들에게 “괜찮아. 희망을 가지고 다시 한번 해 봐. 여긴 천국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냥 조용히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는 게 낫고, 그냥 입 다물고 그가 충분히 괴로워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편이 낫습니다. 


모두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삽니다. 아니, 그렇게 살라고 합니다. 긍정적으로요. 그런데 그 기대는 누구의 기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부모, 어쩌면 당신의 하나님, 어쩌면 내 조국의 기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애초에 나는 기대한 적이 없음에도 언젠가부터 나의 기대가 되어 버린 기대들 말입니다. 모두에게 희망이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갖게 하는 것,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꿈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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