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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김수진 Nov 17. 2024

맞아 죽는 게 나았을까?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고백의 시간입니다. 

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여섯 살이던 시절부터 기억이 납니다. 화장실이 없는, 아주 작은방 한 칸에 부모님과 딸 셋이 함께 살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모른 채 저와 자매들은 거의 매일 부모의 싸움을 울며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빠가 퇴근을 하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아빠는 일방적으로 욕을 하고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움에 덜덜 떨던 저와 자매들은 그 작은방의 구석에 모여들어 울거나 침묵하면서 방바닥만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 제발 그만 때리세요”


시간이 흐르고, 자매들이 성장해도 아빠의 폭력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면 다섯 번, 여섯 번 피가 튀는 폭력이 반복되었습니다. 변한 것이 있기는 했습니다. 엄마는 더 이상 맞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폭력을 행사하면, 엄마는 그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했습니다. 아빠는 엄마를 향해 재떨이를 던지고, 그 재떨이에 머리나 얼굴을 맞은 엄마는 피를 흘리며 아빠를 향해 악을 썼습니다. 아빠는 싸움을 말리는 어린 저의 뺨을 때리고, 몸을 밀쳐 쓰러뜨렸습니다. 언니가 맞는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언니 나이 스물네 살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스물세 살 때까지 맞고 살았습니다. 


자매들과 저는 그렇게 20년 이상을 살아왔습니다. 


부모의 싸움은 시작되고, 아빠는 술병들이 진열되어 있는 진열장 유리문을 향해 그리고 엄마를 향해 물건들을 던집니다. 고등학생이 된 언니는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가 시끄러운 음악을 최대의 볼륨으로 틀어둡니다. 저보다 어리고 여린 동생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그저 엉엉 울고만 있습니다. 엄마의 얼굴과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바닥에 흩뿌려진 술과 술병의 잔해들이 뒤엉켜 가득합니다. 저는 서럽게 울면서 걸레를 찾아 들고 와 “아빠,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바닥의 피와 술을 닦습니다. 


엄마의 취미는 수석 수집이었습니다. 그 돌들은 아빠의 훌륭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은 엄마는 쓰러집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저는 밤 12시가 넘는 시간에 돈을 들고 집 밖을 뛰쳐나가 약국을 찾았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내려져 있던 셔터 앞에 서서 셔터를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가 아파요.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우리 엄마 머리에서 피가 나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자매들과 저는 아빠가 엄마의 머리채를 쥐고 끌고 다니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런 시간이 20년 이상, 우리는 마음의 병을 얻은 채 살아왔고, 그렇게 40대가 되었고, 50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이 아픕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는 장면을 보고는 합니다. 신문 기사는 수없이 많은 어린이들이 가정폭력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현실을 보도합니다. 때리는 남자와 맞는 여자. 맞는 여자, 엄마는 말했습니다. “너희만 아니었다면 안 살았다. 너희 때문에 견디며 살아온 거다” 아니오. 틀렸습니다. 당신도, 당신들도 가해자입니다. 당신은, 당신들은 우리를 그런 환경에 두지 말았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들은 우리를 그런 환경에 방치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들은 자신을 위해 그 공간에서 견뎠을 뿐, 우리를 위해 참아왔던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상처와 눈물과 분노와 우울뿐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지도 몰랐고, 이런 우리들을 구조해 줄 단체나 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경찰 신고도, 우리를 구조해 줄 단체나 기관을 찾는 것도 모두 불가능한 시절이었습니다. 가정폭력은 그저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일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이웃도, 사회도, 국가도 우리의 피해를 눈 감고,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치부해왔습니다. 


자매들과 저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살아 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차라리 맞아 죽는 게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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