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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김수진 Nov 19. 2024

나는 소수자입니다


소수자라는 것은 수가 적은 집단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지기는커녕 배제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와 여성은 전체 구성원의 과반수 혹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수자라 불립니다. 지배적인 권력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인 거죠. 


저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정체성이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고, 50대이고, 경기도민입니다.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저는 두 마리의 진돗개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진돗개 언니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입니다. 


나는 레즈비언입니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 진영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로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정체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봐도 동성애자이지만 스스로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 정체화하지 않는다면 그는 동성애자가 아닙니다.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고, 정체화하고,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동성애자입니다. 명백한 선택의 영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환경적인 이유로 동성애자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사람들은 한때 유행했던 팬픽의 유해성만을 논하지만, 팬픽을 접하며 성장했던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자에 관해 열린 사고를 합니다. 나아가 팬픽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학풍이 강한 대학에 재학 중인 여성들이 스스로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예는 넘치고 넘칩니다. 성장 과정에서 내가 접한 문화의 영향으로 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깁니다. 동성애자로 타고 나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계기, 환경 등에 의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 역시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가 분석한 환경적인 요인은 가정 폭력입니다. 절대 권력을 자신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인 아버지의 폭력은 나를 자연스럽게 레즈비언으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정상 범주” 밖의 사람들을 벌레 보듯 하는(벌레는 아무 잘못이 없고요)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도 포기자도 많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이런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페미니스트로 살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꼭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 봐. 동성애자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잖아? 그럼 그런 환경을 없애면 동성애자도 줄어드는 것 아니야?"라고요. 맞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늘 그런 환경이지 않았습니까. 이성애만 정상이고, 이성애자로서의 삶만 권장되어 온 환경에서 살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님의 문제의식은 새롭지가 않습니다. 님이 제시한 논점을 조금 더 중요한 차원으로 옮겨봅시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이성애만을 강요하는 강압적 이성애주의라는 환경이 사라진다면, 그런 환경에서 당신이 살 수 있다면 말입니다. 당신도 동성애자로 살 수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비육식주의자입니다. 


작은 강아지를 만났고, 19년을 함께 했습니다. 그 작은 강아지를 통해서 비인간동물도 인간동물과 똑같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만의 언어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 당하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육식주의자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권 관련한 책이란 책은 모두 사다 읽었고, 동물보호단체 여러 곳을 후원하였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뜻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작은 동물권 운동 단체 활동도 하였습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들을 존경합니다. 


아무리 사람을 돈에 미쳐 살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생리라고는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에 미쳐 있습니다. 끝없이 돈을 욕망하고, 돈을 모으고 쌓고 불리기 위해 매진합니다. 그 길만이 “성공”을 위한 길이라고 여깁니다. 어느 정도 부를 쌓은 후에는 자신의 부가 얼마 만큼인지 온 천지에 전시하기 위해 물건들에 집착하고, 사들이고, 쌓아두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댑니다. 저는 책장을 모두 비웠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모두 버렸습니다. 필요 없는 물건, 전시를 위한 물건은 전혀 사지 않습니다. 조금 있다가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알 수 없는 와중에 무겁게 이고 지고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현대 의학을 아주 조금 신뢰합니다. 


라면, 떡볶이, 햄버거,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갈비, 곱창, 순대,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술을 평생 죽도록 먹고 마시면서 아파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먹고 마시다가 병에 걸려 병원을 찾으면 의사들은 해당 질환으로 인한 특정 통증과 증세만 개선하는 약물을 처방해 오랜 시간 몸에 들이부으라 합니다. 편도선에 이상이 생기면 편도선을 제거하라 하고, 복막염에 시달리면 복막을 제거하라 합니다. 암이라도 발견되면 앞뒤 가리지 말고 당장 항암 치료를 받으라고 합니다. 의사들은 라면, 떡볶이, 햄버거,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갈비, 곱창, 순대,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술의 섭취를 당장 중단하고 채소, 과일, 현미와 같은 음식을 통해 다른 장기들의 기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게 하면서 해당 질환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현대 의학을 신뢰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의사들은 특정 기관에서 발생한 참기 어려운 통증을 빠른 시간 안에 잠재워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러진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여 줍니다. 좋은 기계를 이용해 저의 무릎 연골 상태가 어떤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세하게 파악해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뿐입니다. 의사들은 질병에 대한 국소적인 접근만 할 뿐이지, 질병을 일으키는 몸 안의 환경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고유의 기능을 하는 몸의 중요 기관들을 무심하게 제거하기 일쑤고,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을 상대로 특정 영양제와 약물을 지속해서 홍보하고, 채소과일식은 나쁘다고 말합니다. 라면, 떡볶이, 햄버거, 스테이크, 불고기, 돼지갈비, 곱창, 순대,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술이 더 나쁜데도 말입니다. 


가정폭력은 저를 우울증 환자로, 레즈비언으로, 페미니스트로 살게 하였습니다. 제가 아프지 않고, 불평등에 관한 아무런 인식 없는 이성연애자로 살았다면 동물권론자로,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아는 자로, 현대 의학의 병폐를 아는 자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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