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by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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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유치원을 다니는 대신에 미술학원이나 주산학원에 등원하는 어린이들은 차별의 시선을 견뎌야만 했어요. 미술학원이나 주산학원에조차 다닐 수 없었던 많은 어린이들이 있었지요.


“너는 왜 유치원이 아닌 학원에 다니냐? (키득키득)”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고 보니 온 세상 룰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반드시 제도권 안에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야만 하고, 고등학교도 웬만하면 상업 고등학교나 공업 고등학교가 아닌 인문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좋은 거였죠. 그 학생이 왜 인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는지 혹은 진학할 수 없는지 따위는 그 누구의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그저 상고 출신이니 공고 출신이니 하는 딱지를 붙이기에만 바빴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고, 가능하면 좋은 대학, 인 서울 대학, 명문 대학, 서울 대학에 진학하면 좋죠. 인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거나 지방대학에 진학한다거나 4년제 대학이 아닌 2년제 대학에 진학을 한다거나 서울 사는 애가 서울 외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전혀 권장되지 않았어요. 그 말도 안 되는 “기대”에 부응하지 않거나 못 한 학생들은 대체로 기가 죽었어요. 고려대학교 학생이 스스로 서울대학교 학생이 못 된 자신을 자책하고 인생을 비관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지요.


이제 대학을 졸업했으니 취업을 해야 하죠. 얼마나 좋은, 유명한,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 돈벌이를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또 경쟁하고, 갈등하고, 싸웁니다. 취업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권장되지 않아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는 건 모험이라고들 하죠.


사람은 대학 졸업, 후 취업 후,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성인 인간을 찾아야 하고, 연애를 해야 합니다. 이건 또 쉬운 일인가요? 이성인 인간을 찾을 생각이 없어도, 이성인 인간과 연애를 할 생각이 없어도 해야 해요. 왜? 결혼해야 하니까요. 결혼은 1 대 1의 결합이 아니죠. 집안과 집안의 결합인 경우가 다수죠. 그 어마 무시한 일들을 당장 벌이라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합니다. 결혼만 하면 다가 아니죠. 이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건 국가까지 나서요. 국가의 유지와 번영을 위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라고 회유하고, 강요하고, 억압합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들지 못하거나 들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상이 되고, 아웃사이더가 되고, 그렇게 소수자가 됩니다. “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착실하게 따르라는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우주적 요구가 휘몰아치는 세상입니다.


아시다시피 위에 쓴 “정상 궤도” 안에 안착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착을 위해 기를 쓰고 쓰다가 자의 혹은 타의로 그 궤도에서 이탈하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좋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해 공유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인생은 그렇게 좋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의 연속이 아닙니다. 인스타그램에 우울하고, 나쁘고, 더럽고, 추악한 것을 올려 공유한다는 상상해 보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그건 “비정상적인 행위”, “불편한 언행”이 되고 맙니다. 인간은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보고, 느끼고, 말하고, 쓰고, 공유해야 합니다.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침울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하로 지하로 숨겨집니다.


어차피 우울한 인생, 좋은 것만 드러내고 산다 한들 뭐가 문제인가? 네, 문제없습니다. 다만, 뭐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주산학원 근처에도 갈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어도,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당장 취업을 하지 않고, 이성과 연애를 하지 않고, 비혼을 선택하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도 그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주춤하지 않을 환경이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세상의 모든 아줌마가 늘 웃는 호호 아줌마가 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세뇌를 당해 왔습니다. 매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무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몸과 마음까지 다 바쳐야 하는지 물어서도 안 됐어요. 그냥 그렇게 가정과 학교와 국가의 요구를 마치 나의 요구인 양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라면 그리 살 필요 없죠. 이 부분에서 딴지를 걸거나 이탈을 하면 “빨갱이”가 되는 겁니다. 마치 “정상 궤도”에 벗어난 사람들이 “아웃사이더”, “비정상”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억압된 현실에서도 다양한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인의 욕구가 발현되고 있다는 거예요. 예컨대, 제도 결혼에 편입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음에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많은 이들이 비혼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결혼 인구가 줄어들고,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지요. 여전히 국가는 우리들에게 결혼을 장려하고, 임신과 출산을 독려하고 있지만, 젊은 층의 1인 가구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야 한다는 주장이 판을 칩니다. “위기”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인구를 늘려 국가를 운영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만 머물지 말고, 줄어든 인구로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내용이 바뀌면 틀을 바꿔야지요. 모든 내용을 하나의 틀 안에 몰아넣을 생각만 하는 게 아니고요.


한 번 사는 인생,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살아도 좋습니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진보하기를 원한다면 그 일에 뛰어드는 삶을 살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아닌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날고 싶지 않으면 날지 않으면 됩니다. 뛰고 싶지 않다면 뛰지 않으면 됩니다. 그저 뚜벅뚜벅 천천히 걷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그리고, 행하고, 기리면 됩니다.


‘그래도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런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상태여도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한 그 길에 기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숨을 쉬고, 먹고, 움직이는 모든 순간이 국가 경영에, 진보의 그 길에 동참하는 결과를 냅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든 소비합니다. 식음료 구입, 의료비 지출, 교통비, 납골당 유지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작고 큰 소비는 그 자체로 우리 경제에 이바지합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걱정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동물도 죽어가면서 혹은 죽임을 당하면서 ‘내 가죽만은 남겨다오’라 청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그냥 인간인 우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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