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미영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미영이는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부터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카페에서 미영이와 만났어요.
수진 : 그럼, 너는 대학생일 때도 연애를 안 했던 거야?
미영 :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지.
수진 : 너는 연애를 꼭 하고 싶어?
미영 : 꼭 하고 싶다거나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왜 나만 이렇게 사나’하는 생각에 가끔 괴로울 때는 있어. 벌써 30대 중반인데, 연애 한 번 안 했다니 이게 얼마나 기가 막인 일이야.
수진 : 살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는 있었지?
미영 : 없었어.
수진 : 그럼, 가능성을 조금 더 넓혀 보는 건 어때?
미영 : 무슨 소리야?
수진 : 그럼, 여자를 만나봐.
미영 : 미친년!
미영이는 연애는 물론 사랑을 하는 이성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짝사랑 경험도 전무하다고 하고요. 그냥 늘 혼자가 편했고, 좋았다고 해요. 다만, 주변에서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많이 하고, 미영이 자신도 남들이 권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왜 여자를 만나보라는 나의 제안에 미영이는 욕을 했을까요? 그건 동성애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연애를 하고 싶지 않거나 하고 싶더라도 인연이 되지 않아 연애를 못 하게 된 경우는 사회적으로 왜 이토록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여기는 것일까요? 사랑은 또 어떤가요? 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도 같은. 폭발적인 그 사랑의 감정은 과연 일반적인 감정일까요? 핑크빛으로 물든 그 폭발적인 감정 상태가 정상일까요? 혹 그 감정 상태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감정 상태 아닐까요? 일종의 감정적 질병상태가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해야만 정상인 취급받던 시절은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결혼은 가족, 사회, 국가 차원에서 적극 장려되고 있습니다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비혼을 선택해 살아가는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애와 사랑 역시 그래요. 연애와 사랑조차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가 자주 보입니다. 혼밥, 혼술, 나 혼자 산다 등 일상의 대부분을 혼자 살아내고, 살아가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애는 아무나 하나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요?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랫말 속 연인의 만남, 사랑, 이별 이야기가 과연 일반적인 우리들의 이야기이겠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꼭 왜 이성인 사람과만 그런 감정과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는 겁니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노동력 재생산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영이 자신은 사랑과 연애에 관심이 없어도 오랜 시간 사랑과 연애를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 홍수 속에 살아야 합니다. 소위 결혼 적령기라는 기간에조차 만나는 사람 하나 없으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는 거죠.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는 이런 구조 속에서 미영이는 쉽게 불행해집니다. 자학을 하게 되고요.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수많은 개인들에게 사랑, 이성애, 연애,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를 강조하고 강요합니다. 꼭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인류의 번영과 영속을 위해 짝짓기와 출산을 매우 장려해 왔습니다. 부족의, 국가의, 민족의, 세계인의 번영과 영속을 위해 모든 개인에게 이를 권장하고, 강요해 온 것입니다. 그러니 천만 번 뽀뽀를 해도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레즈비언이나 게이 커플들의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장려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꼭 그 틀에 맞추어 살아야 하나요?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내 개인의 인생을 그 틀 안에 꽉 끼게 맞춰 살아야 합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안 살면 됩니다.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을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바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덜 불행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 연애,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룬 것도 아닙니다. 임신과 출산을 해야 하죠.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시죠? 아들만 원하던 시절, 아들 낳지 못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까? 씨받이니, 첩 문화니 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들 모두가 임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별의별 노력을 하고, 돈을 들이부어도 결국 임신에 실패하는 분들도 정말 많습니다. 또 자녀를 원하지 않는 부부들도 참 많고, 이 역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양육에 치이는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자녀 가족들 역시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간주합니다. 아직도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속삭입니다. “1302호 여자, 애가 없다나봐”, “701호 남자랑 여자는 애 없이 둘이 사는 모양이야” 한 마디로 이상하단 겁니다. 있어야 할 애가 없으니 뭔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겁니다. 예전처럼 무자녀 가족을 대놓고 죄악시하는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좋은 험담 소재가 되고는 하지요. 아직 현실은 이러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더 많이, 다양하게, 자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핑크빛 사랑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할 때, 로미오가 줄리엣을 폭행할 가능성은 없었을까? 로미오 혹은 줄리엣이 외도를 했을 가능성은? 임신에 실패했을 가능성은? 출산에 성공하여 낳은 아들이 젊은 나이에 사고사를 당했을 가능성은? 장애아를 출산했을 가능성은?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연애하고, 평생 함께 사는 것이 정말 정상적일까? 좋든 싫든 애를 낳았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이혼은 적절하지 않다는 고정관념 자체가 비정상적인 관념, 사고가 아니었을까? 어째서 기본적인 자격시험조차 보지 않은 이 수많은 인간들이 저리도 쉽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정선아, 그래서 수빈아, 그래서 미영아, 너는 행복하니?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지속해야 정말 나를 위한 좋은 선택지들을 찾을 수 있고, 내 삶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