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재학 시절, 우리 학교는 백팩을 메지 못 하게 하였고, 오로지 흰색 양말만 신도록 강요했습니다. 당연히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도 몸에 달고 다닐 수 없었지요. 같은 반 친구들 중 일부는 소심하게 반항을 했습니다. 몰래 백팩을 들고 와서 하교 시에 백팩으로 바꾸어 멘다든가, 컬러풀한 양말을 신고 등교를 했어요. 문제는 가끔 선생한테 걸린다는 겁니다. 긴 막대기를 들고 학생 패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선생한테 걸린 친구들은 무자비하게 맞아야만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사귀던 오빠가 군 입대를 하면서 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가 걸려서 선생한테 혼이 나고 목걸이를 영원히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영원히 이 목걸이를 찾아갈 수 없을 거야!”
저는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교복 치마를 접지 말라고 하기에 접지 않았고, 선생을 보면 무조건 머리 숙여 인사하라고 하기에 90도 각도로 숙이며 인사를 했습니다. 오른쪽 어깨에만 걸칠 수 있는 한 줄짜리 무거운 가방을 착실하게 메고 다니다가 어깨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끝까지 한 줄짜리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습니다(당시에는 학교에 개인 사물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옷장 서랍엔 흰색 양말만이 가득했고, 장신구는 단 하나도 사지 않았습니다. 매우 말을 잘 듣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매우 말을 잘 듣는 이 학생은 질문을 참 잘했습니다. 아마도 학교 선생들이 질문을 하면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늘 손을 번쩍 들어 선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왜 색이 들어있는 양말을 신으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양쪽 어깨에 메는 가방을 메면 균형을 이루게 되니 더 몸에 좋은 게 아닐까요?”
“고등학생도 연애를 할 수 있고, 사랑도 할 수 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군 입대를 하면서 남긴 목걸이를 선생님이 뺏어 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닙니까?”
웬일인지 선생들은 질문을 못 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제가 하는 질문들에 적합한 답을 내놓지도 않았습니다. 질문을 하면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거나 “내가 하라고 하면 너희들은 그냥 하기나 해!”라고 윽박을 질러댔습니다. 아니면 제 질문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 선생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수준들 하고는... 쯧쯧쯧’
대학에 입학을 했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업으로 삼으면서 사사건건 비판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따지던 성향이 극에 달했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이해가 가지 않거나 어려우면 상대방에게 늘 질문했고, 따졌고, 싸웠습니다. 그랬더니 말투도, 눈 모양도 날카롭게 변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제가 싫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런 눈으로 무섭게 따져 묻고 싸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대 초반이었던 시절, 어느 날엔가 한 대학 캠퍼스를 거닐었어요. 그러다 잠시 쉬고 싶어서 벤치에 앉았지요. 앉아 쉬고 있는데, 어떤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옆자리에 앉으시더라고요. 짧은 시간이나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보니까 학생은 날이 바짝 서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깎이고 깎여서 무딘 칼처럼, 동글동글한 돌처럼 바뀔 거예요”
나는 즉각 반응했어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맙소사.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 그 분과 비슷한 나이인 50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음... 그럴 일이 있더라고요. 깎이더라고요. 꺾이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주 동글동글 난리입니다. 이러다 아주 공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이 되어 가는 염세주의자는 세상을 화끈하게 바꿔내지는 못해요. 예전부터 자주 하던 말이 하나 있어요.
“세상은 10대와 20대가 바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세상을 화끈하게 바꾸는 주체는 늘 10대와 20대 청년들이었어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그랬고, 80년대 민주화 투쟁이 그랬죠. 그래서 저는 여전히 동글동글해지고, 공이 되어가는 것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요.
그렇다고 공이 되어가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죠. 청년들처럼 “화끈하게” 바꾸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천천히, 서서히, 뚜벅뚜벅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서 변화를 이루는 이들도 있어요. 그들은 늘, 소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