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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김수진 Nov 18. 2024

나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염세주의자의 세상 읽기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우울해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나 저는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린 저는 살기가 싫었고,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증상이 우울증의 증상이었지만, 저는 제가 우울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천성은 밝고 씩씩한 편이었는지 학교생활이나 교우 관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저는 “분리”를 굉장히 잘 하는 어린이였던 것 같습니다. 집에서의 문제를 안고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밝고, 씩씩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학교생활에 별문제가 없었던 이유 말이지요. 


저는 평생 이 “분리”를 잘 해 오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고 뒤돌아서면 잘 잊습니다. 즐거운 일을 경험하고 뒤돌아서도 그 즐거운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간, 어떤 상황에서도 뒤돌아서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랬습니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과거의 일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받을 고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기억하고, 곱씹고 생각해야 하는 일에서조차 그렇게 했습니다. 예컨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에 역시 그리하였습니다. 이는 타인에게 있어 또 다른 지옥을 선물하는 일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제 자신의 분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늘 두 가지의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너무 극단적이다”, “왜 그렇게 일관적이지 못 한 것이냐?” 제 마음은 언제나 둘로 쪼개어져 있었습니다. 생각은 늘 극단의 두 가지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현재에도 진행 중입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중인격자”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6년 동안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습니다. 계기 역시 “아빠”였습니다. 하루에 열다섯 알의 약을 먹었습니다. 약은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항불안제, 수면제입니다. 처음 병원에 가서 다양한 검사를 하고 상담을 해주었던 의사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생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아주 오래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신경정신과 약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아예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감수하고자 했습니다. 우울증은 이미 지옥에 떨어진 저를 더한 지옥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은, 도저히 그리 살아낼 힘도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물여섯 살이던 해에 안 좋은 일을 계기로 우울 증상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5년 동안 쓰고 있던 밝고, 씩씩한 가면을 더 이상 쓰고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저의 “진짜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기력은 저를 쉼 없이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씻는 것, 일하기 위해 외출을 하는 것,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리모컨을 손으로 잡는 것, 부엌까지 걸어가는 것...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그 어떤 일들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숨 쉬는 일조차 버거웠고, 숨 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죽고 싶었고, 자살하지 못하는 자신을 혐오했습니다. 그렇게 13년을 살았습니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약을 복용한지 2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재활용 쓰레기들을 정리해서 들고 집 밖을 나섰고, 잘 버리고 빈 가방들을 들고 집으로 잘 들어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모든 과정을 사력을 다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 끼어든 “다른 생각”이나 “다른 기분”이 없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억울했습니다. 누구에게 지난날의 고통을 호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난날 들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원망의 눈물인지, 억울함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아마도 그 모든 것이겠지요. 


물론 약을 복용하고 했다고 전혀 우울하지 않거나 무기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살 것 같았습니다. 현대 의학의 그 모든 치명적인 해악과 병폐에도 불구하고, 약을 복용하던 그 시기만큼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열다섯 알의 약들에게, 그 약들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준 의사에게, 현대 의학 발전에 이바지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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