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일기 #15. 갑과 을, 그 아름다운 질서

갑질일기가 꿈꾸는 관계

by heavenlyPD

❉'갑질일기'는 철저히 '을'의 관점에서 쓴 기록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를 배출하는 통로 역시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으로 살아낸 이야기입니다.



갑질일기를 쓰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갑과 을’의 관계는 애초에 어떻게 설계된 걸까.


‘갑(甲)’과 ‘을(乙)’.
이 단어들은 원래 단순히 순서와 구분을 의미했다.

조선시대 실록에서도 관계의 구분을 위해 쓰였고,
계약서에서는 단지 당사자를 표시하는

중립적 기호였다.


본래 ‘갑’과 ‘을’ 사이에는 우열이 없었다.
그저 역할의 구분, 질서의 이름이었을 뿐.


하지만 언제부턴가
‘갑’은 권력을,

‘을’은 약자를 상징하게 됐다.


순서였던 단어가 서열이 되었고,
질서였던 관계가 위계로 변질됐다.




어느 사회든,

어느 시대든 질서는 중요하다.


지시하는 사람이 있고,
그 지시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


이건 사회가 작동하기 위한

기본 원리이자, 질서다.


문제는 언제 생기는가!

바로, 질서가 파괴될 때다.


갑이 을을 함부로 대할 때.
을이 책임을 회피할 때.
서로에 대한 존중이 사라질 때.


그때 가해자와 피해자가 생기고,
‘갑질’이라는 이름의 횡포가 자행된다.




내가 진리라고 믿는 성경은

갑이 을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꾸짖는다.


오히려 권력자가 약자를

섬기고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10:43)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에베소서 6:5)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에베소서 6:9)


갑이 을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

힘을 가진 자가 겸손히 타인을 대하고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신 질서였다.




갑질일기를 쓰며 깨달았다.


우리가 분노했던 건 '갑'이 아니라,

질서가 무너진 순간이었다는 것을.


섬김이 군림으로,

존중이 명령으로,

책임이 통제로 바뀐 그 순간들.


결국 우리의 분노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를 향해 있었다.


‘갑’과 ‘을’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세워져야 한다.


주어진 역할에 책임과 배려가 더해질 때,
그 관계는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질서는 위에서 누르는 힘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는 책임이다.


권위는 특권이 아니라
섬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갑과 을,

그 관계의 질서가

다시 아름답게 세워지길 꿈꾼다.


갑이 을을 섬기고,
을이 갑을 존중하는 세상.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아니, 가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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