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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Oct 30. 2024

당신에게도 있는 날

가을 남자(秋男) 이야기

1년 365일 중 하루.

지구에 살았었던, 살고 있는, 그리고 살고 있을

모두에게 주어지는 하루.


개인적으로 생일은 굳이 챙겨야 되는 날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5일 매일매일이 누군가의 생일입니다.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있겠으나

자의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은 없으므로

오히려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자를 생산하는 쪽에서 기념을 하면 했지

타의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이가 기념을 할 날은

아니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기념할 날도 많고,

집안에서 기념해야 할 날도 많은 까닭에

굳이 일 년에 하루,

내가 기념해야 할 나만의 날을 정해야 한다면

생일보다는 다른 날을 택하는 것이

좀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처음 부모님께 한 번 대차게 반항을 해본 날.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시간이 너무 흘러

그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신은 서서 혼을 내고 있었고,

저는 앉아서 혼이 나고 있던 그날.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저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던 그날.

한참을 나무라시던 당신을,

이제 머리통 하나 보다 더 차이가 나는 당신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당신의 눈을 빤히 마주하고

씩씩거렸던 그날.

그날, 당신의 얼굴 위로 수 없이 바뀌어 가던 표정들.

놀라움, 황당함, 분노, 체념, 씁쓸함.

한동안 그런 상태로 우두커니 서 있다

아무런 말 없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서던

당신의 뒷모습.


부모는 그렇게 가슴에 칼 한 자루가 박히고 나서야

자식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게 되나 봅니다.

그리고 자식은 부모 품을 떠난 세상이,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줄이 끊어져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마냥 신이 난

강아지처럼 그 험난한 세상 속으로 뛰어듭니다.

뛰어든 세상 속엔 개장수가 천지인줄도 모르고 말이죠.


아니면,

처음 집을 떠나 독립 거주를 한 날도 괜찮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와서

처음 자취방을 구한 날.

2~3평 남짓한 반지하 방,

책상 하나 작은 침대 하나 놓았더니

바닥에 상하나 펴기도 힘들었던 반지하 자취방.

한쪽벽에 창문이 하나 있었지만,

커다란 벽이 바로 붙어 있어 늘 불을 켜고 지내야

했던 첫 독립생활.

그 반지하방에서 저는 치약과 비누는 초파리처럼

자연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참치와 샴푸가 엄청난 고가의 제품이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더랬죠.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기념할 만한 날들이

떠오르지만..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이제 당신이,

당신의 기억 속에서 기념하고 싶은,

혹은 기념해야 할 날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어쨌든 오늘은,

당신에게도 있는 날,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 년에 하루 주어지는 날.

생일,

제가 태어난 날입니다.


뱃속에서 애지중지 열 달을 보듬어

귀하게 세상에 내보내느라.

험한 세상에서 눈, 코, 입,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어디 하나 상하지 않고 안전하게 키워내느라.

남들보다는 아니더라도 남들만큼은 해주고 싶어

초, 중, 고, 대학교 학비 대느라.

그렇게 힘들게 키워냈더니 내 자식도 아닌

내 자식이 낳은 자식 키워주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죄송하다는 말을

마음으로 전해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오늘이 생일인 모든 분들께.

살아오느라, 살아 내느라, 살아 가느라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 하루는,

당신의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는 좀 더 평안하고

그 어느 때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그런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 축하합니다.



짝짝짝짝짝!

케잌은 없지만 다 같이 불어볼까요?

아, 잠깐만요! 소원 생각하셨나요?

그럼 자 다 같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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