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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Nov 02. 2024

그대가 내 안에 박혔다

저기, 나 좀 봐줄래?

아침 먹은 그릇들을 치우려는데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 저기, 나 좀 봐줄래?


마음을 흔드는 농익은 목소리.

귀를 간지럽히는 그녀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나는 식탁 위를 정리했다.


저녁에 먹을 고기를 해동해 놓으려

냉장고로 걸어가는데

그녀가 다시 멀을 건넨다.


- 나 좀 봐주면 안 돼?


아찔한 마성의 목소리.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다시 냉장고로 향했다.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내 싱크대에 올려두고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휘돈다.


- 나 좀 봐줄래?

- 나 좀 봐주면 안 돼?

- 나 좀...

- 나...


흔들리는 머리를 더 흔들어봐도

웅크린 몸을 더 웅크려봐도

그녀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다본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그래, 이제 좀 낫네.


Kissy face, kissy face

Sent to your phone but,

I'm trying to kiss your lips for real

Red hearts, red hearts

That’s what I’m on yeah

Come give me something I can feel

Oh oh oh

Don't you want me like I want you, baby

Don't you need me like I need you now

Sleep tomorrow but tonight go crazy

All you gotta do is just meet me at the


하아, 하필 가사가..


아무리 그래도,

오늘은 절대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으리라.

어제도 그녀의 달콤한 말에 넘어갔다

결국 깨져버린 건 오늘의 내 루틴뿐이었다.


나는 다짐을 하고,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책을 보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하고, 책을 보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아무런 말이 없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돼지고기 수육을 삶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니.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하아.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를 들어 올렸다.

아뿔싸, 온몸이 젖어있다.

이런, 너무 늦은 건가.

재빨리 응급처치를 한다.

일단 그녀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그녀의 막혀있던 기도부터 개방한다.


그녀의 혈색을 살펴보고

그녀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다행이다.


- 쪼르륵


투명한 잔으로 그녀를 옮겨 천천히 휘두른다.

투명한 잔에서 그녀가 이쪽 면에서 저쪽 면으로

투명한 잔의 매끄러운 곡면을 따라 춤을 춘다.


휘돌리던 잔을 멈추고

다시 한번 그녀의 혈색을 살펴본다.

멈춰있던 잔을 들어 올려

슬며시 그녀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다행이다.


슬며시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그녀의 마지막 말이 들려온다.


- 사랑해


차가운 한 모금이

따뜻한 입안을 휘돌다

꺾어지는 식도를 타고 흐른다.

가슴 안쪽으로 그녀가 느껴진다.


나도.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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