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보고 왔는가
- 시원하게 보고 왔는가. 그럼 이제 시원하게 도장 찍자고!
아, 그리고 이번 계약 끝나면 조만간 우리 집에서 밥이나 한 끼 하세.
크흠, 온 김에 내 딸도 한 번 만나보고 말이야. 하하.
돌아온 남자에게 노인이 장난치듯 계약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노인의 앞에 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뭐 하나, 이 사람. 하늘이 무너질까 봐 서있는겐가. 어서 앉게.
-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번 계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 뭐? 이 사람 이거 뭐 잘못 먹은 게야? 이게 자네한테 얼마나 유리한 계약인지 몰라서 하는 소린가? 내가 이런 조건으로 계약을 하는 건 처음일세. 자네가 처음이란 말이야. 잔말 말고 도장이나 찍게. 내 다 자네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노인은 자신의 후계자로 남자를 낙점한 상태였다. 그런 남자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니 조바심이 났다.
-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한테만 해주시는 이런 조건의 계약.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분명 저한테 바라시는 게 있으시겠지요. 저는 실패를 하더라도 제 힘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 허어, 젊은 친구라 그런지 꽉 막혔구먼 그래. 사업이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야. 이번 기회 놓치면 자네 평생을 후회할 걸세.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아니, 지금 당장 결정하라고도 내 하지 않음세. 이건 자네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이 답답한 친구야.
- 제 결정은 변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그간 봐주셨던 편의는 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뭔가 말을 하려던 노인은 남자의 굳은 표정을 보고는 꺼내려던 말을 다시 그대로 삼켰다.
- 그래, 자네 결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건승하시게.
말을 마치며 노인은 잠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을 나설 때까지 노인의 눈은 다시는 남자를 향하지 않았다.
노인이 문을 나서자 노인의 등 뒤에서 남자가 허리를 깊숙이 굽혔다. 둘 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
- 살펴 가십시오.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