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II), 남2

남자는 좁쌀만 한 화두를 부여잡고 밤새 씨름을 했다

by 박나비

남자는 좁쌀만 한 화두를 부여잡고 밤새 씨름을 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환한 빛 속에서 느꼈던,

절반의 화두가 녹아내릴 때 느꼈던 그 깨달음의 희열을 남자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희열. 그 감동. 그 환희.

그때 남겨진 절반의 화두가 자신과 함께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남자는 그 희열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침식도 잊고 화두에 매달렸다.

노인이 남자의 방문 앞에 서너 번이나 다녀 갔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남자는 참선에 빠졌다.


깨질 듯 깨질 듯 깨지지 않는 좁쌀이었다.

좁쌀만 한 화두 하나가 남자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깨달음을 얻을 듯 말듯한 묘한 상태로 좁쌀만 한 화두를 좇다 보니 남자는 점심이 된 지도, 저녁이 온 지도 몰랐다.


* * *

남자의 방문 앞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놓여있는 그릇들을 보며 노인은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때였다.


쿨럭쿨럭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나온 기침 소리에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노인은 이미 늦었음을 알았다.


- 스승님, 오셨습니까.


어느새 방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노인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 괜히 나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졌구나.


-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만 일어날 참이었습니다.


- 그래, 잠겨있어 보니 좀 어떻더냐. 뭐 좀 건질만한 게 있더냐.


- 건질 화두는 좁쌀만 한데 제 그물이 너무 성성해 어찌 잡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거 참 쉽구나. 화두를 키우거나 네 그물을 좀 더 촘촘하게 짜면 될 일. 이제 제법 중다워졌구나. 어젯밤부터 꼬박 아무것도 못 먹었을 터인데 식사나 하거라. 크흠.


말을 마친 노인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향로전 모퉁이에서 노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쿨럭쿨럭

노인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노인의 기침소리는 남아 향로전을 멤돌았다. 남자는 자신의 발치에 놓인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남자는 방을 뛰쳐나와 노인의 뒤를 쫓았다.


- 스승님! 스승님!


- 허어. 좀 전까지 제법 중다워졌다 여겼더니.. 쯧쯧.. 안될 놈이로다.


- 스승님! 의원에 다녀오신 건 어찌 되셨습니까!


남자의 물음에 노인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어졌다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자는 노인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그게 그리 호들갑을 떨 일이더냐.


- 의원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 늙으면 당연히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 법. 별 큰 이상은 없다고 했느니라.


- 정말입니까 스승님, 정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 것이 맞습니까?


- 어허. 이제 내 말까지 못 믿겠다는 게냐. 안 되겠구나. 앞으로 한 달간, 매일 아침공양 이후 저녁공양 때까지 면벽수행을 하거라.


노인은 애처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그대로 세워둔 채 자리를 떴다.

남자는 시야에서 노인의 모습이 사라진 뒤로도 한참을 그렇게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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