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III), 남2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by 박나비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좁쌀만 한 화두는 이제 티끌만큼 작아져서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으면 화두 자체가 있다는 것도 자각하기 힘들었다.


분명 이때쯤이었는데..


노스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동자승이 놀라 뛰어와 자신에게 알린 게 딱 이맘때쯤이었다.

그때 자신도 놀라 신도 제대로 못 신고 맨발로 뛰쳐나갔었던 게 기억났다.

정신없이 대웅전에 도착해 보니 스승님은 엎드려 계셨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자세 그대로.

스승님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숨이 멎어계셨다.


그때 스승님의 얼굴이..

얼굴이 어땠었지?


갑자기 그때 스승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스승님의 표정이 어땠더라.


그때 노승의 얼굴만, 노승이 짓고 있던 표정만이 남자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수 천 장의 벽돌로 쌓아 올린 벽에서 딱 한 장만 빼놓은 것처럼.

스승의 마지막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남자는 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왜 그 장면만 생각이 나질 않는 건지 남자는 가슴이 답답했다.

결국 남자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을 쐬자 정신이 조금 명료해지는 것 같았다. 이미 밤은 깊었고, 저 멀리 산속에서 산짐승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하릴없이 앞마당을 왔다 갔다 거닐다 이내 그것도 그만두고 문턱에 걸터앉았다.

나올 땐 캄캄했는데, 어느새 구름 속에 숨어있던 달이 나타난 건지 주변이 환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제법 깊은 산속이라 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한 바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둘러본 남자는 의아했다.

하늘에 달이 없었다.

달도 뜨지 않았는데 이렇게 밝을 수가 있나.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웅전이었다.

대웅전이 환한 빛에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때 흙바닥을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남자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모퉁이 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향로전 모퉁이에서 동자승이 튀어나오는 걸 본 남자는 절망했다.


- 헉헉, 노스님이.. 헉헉.. 노스님이!


남자는 동자승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웅전으로 뛰어갔다.

작은 돌들이 맨발바닥에 박혀 쓰라렸지만 남자는 자신이 맨발인 것도 알지 못했다.

대웅전의 앞에 다다랐을 때, 이미 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남자는 대웅전 안을 살펴보았다. 스승은 불단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눈물을 흘렸다.

그날이.. 오늘이었구나.. 오늘이었어..

이제서야 남자의 뒤를 따라온 동자승이 울먹이며 말했다.


- 노스님은.. 노스님은 어떻게 되신 거예요?


남자는 뒤를 돌아 동자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 스님께선.. 입적하셨다..


말을 마치고 남자는 다시 돌아섰다.

돌아선 남자의 뒤로 동자승의 울음소리가 한밤중의 산속에 깊이 울려 퍼졌다.

이전 10화中(III), 남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