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한 계약을 거부하고
일생에 한 번 찾아올까 한 계약을 거부하고 남자는 자신의 힘만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유리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한 군데씩 거래처가 끊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달 새 사업을 정리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없지. 내 힘으로는 여기 까지였던 거지.
남자는 좌절하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모든 걸 놓아버리지도 않았고 비굴하게 부정한 방법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주고 한 명 한 명 남은 직원들에게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했다.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당신들 덕분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해볼 수 있었다고.
회사를 정리한 남자는 작은 가게를 차렸다.
기존의 사업에 비하면 십 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초라한 규모였지만 남자는 열심히 가게를 꾸렸다. 즐겁고 행복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 명 두 명 단골이 늘어갔고, 남자의 가게는 금세 자리를 잡았다.
남자는 매일 과일을 사러 오던 아가씨 한 명과 제법 친해졌다.
근처 작은 회사에서 경리일을 한다고 했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차분한 분위기의 이 아가씨가 남자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고백은 못 하고 그저 사과를 사러 온 날엔 귤을 서너 개 더 넣어주었고, 포도를 사러 온 날엔 사과를 두세 개 넣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전부였다.
* * *
오늘은 사과를 사러 온 모양이었다. 여자는 소쿠리에 놓인 사과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남자가 조용히 뒤쪽 창고로 가, 선물용으로 판매하는 바구니에서 사과 몇 개를 꺼내왔다. 그리고 검정 비닐봉지에 가져온 사과를 담고 옆에 있던 귤을 네댓 개 집어 넣고는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가 내민 봉지를 받았다.
봉지를 받은 여자는 가만히 봉지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귤을 꺼내 남자의 손에 놓아주며 여자가 말했다.
- 이거 말고, 다음에 커피 한 잔 사주세요.
남자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런 남자의 표정이 재밌었는지 여자는 싱긋 웃으며 가게를 떠났다. 남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 총각! 나도 사과 사면 귤 다섯 개 주는 거야?
남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