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때도 이런 빛이었는데..
여자는 남자의 밀린 월세를 다 내어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돈 전부를 남자가 말한 땅에 투자했다.
여자의 일생에서 난생처음 해보는 투자였다.
남자도 땅을 실제로 사보는 건 처음이었던 터라 잔뜩 긴장했지만, 제법 괜찮은 땅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투자는 대성공이었고 남자와 여자는 신이 났다.
다음 해 남자와 여자는 결혼식을 올렸고, 둘은 모은 돈으로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했다.
투자하는 금액이 커질수록 그들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월세로 장만한 신혼집이 전세로, 그리고 다음 해에는 여자의 명의로 작은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집을 어떻게 자신의 명의로 하냐는 여자에게 남자는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데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했다.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가 시내 요지의 번듯한 아파트로 변했다. 남자 명의의 집도 한 채 생겼다.
그렇게 집이 몇 채가 더 생겼고, 두 사람은 작은 건물도 하나 사들였다.
이제 두 사람은 밤을 새우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락내리락거려도 가슴 졸일 필요가 없었다.
돈이 돈을 버는 단계였다.
투자한 돈은 계속해서 몸을 불려 나갔고, 집과 건물에서 들어오는 월세만으로도 두 사람은 이미 고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아득히 넘어섰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아들이었다.
남자는 아들에게 동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이는 건강하게 자랐고, 두 사람의 재산은 끝을 모르고 늘어났다.
그즈음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다투는 횟수가 조금씩 잦아졌다.
처음엔 그저 여자의 작은 부탁이었다.
투자사니 부동산회사니 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조금만 줄여 달라.
주말마도 골프장에 가는 것도 하루는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달라.
남자는 그저 알겠다고만 할 뿐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은 여자가 만두를 사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셋이서 오랜만에 다 같이 만두 파티를 하자고.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만두가 먹고 싶으면 아주머니를 시키면 되지 뭐 그런 걸 자기에게 부탁하느냐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남자는 매일 새벽이 되어서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고, 주말이 되면 아예 집을 비웠다.
여자도 그때서는 모든 걸 놓아버렸다.
여자도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는가 하면, 집에 있을 때도 늘 손님들을 초대했다.
집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고, 연일 파티가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의 학창생활은 불 보듯 뻔했다.
아이는 돈으로 친구들을 샀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혔고, 무리와 어울려 술 담배를 즐겼다.
집에 넘쳐나는 게 술과 담배, 그리고 돈이었다.
학교에선 몇 번이고 아이의 부모를 찾았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의 학교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여자는 낮에도 술에 취해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 * *
어느 주말, 이틀간 지방으로 라운딩을 간다던 남자가 일정이 바뀌었는지 마음이 바뀐 건지 술에 취해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선 남자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거실 소파에서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이 온 것도 모른 채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남자는 한 손에 골프채를 들고 조용히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서너 걸음 앞에 남자가 왔을 때 그제야 두 사람은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놀라서 튕기듯 떨어져 나온 남자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골프채가 남자의 머리를 박살 내버렸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여자 옆에 머리가 터져 피를 철철 흘리는 남자가 엎어졌다.
남자는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더니 이내 미동도 하지 않았다.
- 나이스샷! 오늘 공이 유독 안 맞는다혔어 나가. 이제야 좀 맞는 것 같네 그래.
여자는 몸을 벌벌 떨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가 살면서 마지막으로 본 건 자신의 얼굴 정면으로 날아오는 7번 아이언이었다.
먼저 쓰러져있던 남자의 등위로 여자가 쓰러졌다.
서로 엇갈리게 쓰러진 두 사람의 몸은 마치 X자 같았다.
남자는 두 사람의 몸뚱이마저 마치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들고 있던 골프채를 계속 휘둘렀다.
쓰러진 두 사람 위로 쉴 새 없이 골프채를 휘두르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주변의 모든 걸 박살 내기 시작했다.
* * *
남자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한 짓을 둘러본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의 눈에 엎어져 있던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처참했다. 문득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 오늘은 만두 한 번 사와 봐요. 오랜만에 셋이서 같이 먹어보게.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남자의 뒤에서 빛이 환하게 비쳤다.
놀란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손전등으로 남자를 비추고 있던 경찰이 말했다.
-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남자는 다시 고개를 들고 손전등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 아, 그때도 이런 빛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