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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06. 2023

와인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학번은 같지만 나이는 나보다 2살이 많은

대학 동기 G 형이 있다.

고향도 같은 지역이라 둘이 만나면

신나게 사투리를 쓰며 술잔을 비워댄다.

거의 끝장을 볼 때까지 마시는 스타일이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목소리가 크다.

게다가 그 큰 목소리로 어찌나 말이 많은지,

그와 만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귀에서 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정도다.


그런 그를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목소리는 컸다.

G와는 절대 비밀 얘기를 할 수가 없다.

G와 비밀 얘기를 한다는 건

그날 그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그 술집이 얼마나 크건 상관이 없다.

술집이 아무리 커도 G의 목소리는

술집 전체를 커버한다.

G는 그런 남자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항상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한 듯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쓸데없는,

뭔가 수준 높아 보이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게 저 정도로 열을 낼 주제던가라는

생각이 드는 류의 얘기들만 하곤 한다.


예를 들면… 하아, 아니다.

그와의 대화를 떠올려보니 심히 부끄럽다.

자세한 예는 들지 않기로 하자. 왜냐면…

여긴 고품격 와인 스토리를 담아내는 곳이니까.


오랜만에 만난 G는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걸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아니 길 건널 때 말 걸지 말라고.

같은 신호에 걸어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고.


“여기 부대찌개 진짜 맛있는 집 있다! 가자!”


하아… 제발 좀… 지금 여기 길 건너는 사람들부터

저기 멀리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 사서 나오는

아가씨까지 우리 오늘 부대찌개 먹는 거 다 알겠다.

라고 속으로 한숨을 쉬어 보지만,

뭐 이런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G는 그런 남자다.


“오! 그럼 거기 와인 사서 가져가도 되려나?”


거의 뛰다시피 황급히 횡단보도를 건너와

G에게 물어본다.  


“부대찌개에 무슨 와인이야!

콜라에 밥 말아먹는 소리 하지 말고

와인 먹고 싶으면 다른 데로 가자.”


와, 이 형 진짜 뭘 모르네.

부대찌개에 레드와인이 얼마나 찰떡콩떡인데!

한 번 페어링 해보면 점심 식사로

부대찌개를 먹을 때마다 레드와인이 생각나

평일 점심의 직장인을 괴롭게 만드는

무적의 조합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와인만큼이나 안주에 진심인 우리지 않은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알았으니 그만 째려보시라.

곧 시작한다.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 와인 스토리

제4화, 이제 시작.




제4화. 와인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시는 모습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가끔 우리 테이블뿐 아니라 전혀 모르는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까지도 관찰해 보면

꽤 재밌다.

(너무 뚫어져라 다른 테이블을 바라보는 건

그들의 즐거운 음주 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신과 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실례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세요.

고품격 와인 스토리, 일상 와인 캠페인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안주를 먹는 방식을 보면

유형들이 몇 가지로 나뉜다.


먼저,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안주를 먹는 스타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할 것 같다.

아마 당신도?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와인의 쓴 맛을 빨리 잊기 위해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와인을 삼켜버리고,

잔을 내려놓자마자 재빨리 안주를 입에

집어넣는다.

또 어떤 이는 조금 오래 와인을 머금고 있다

가볍게 삼킨 후 머금었던 와인의 향과 맛이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적절한 시점에 안주를 더해

준비된 와인 특유의 맛과 향을 더 끌어내기도 한다.   

또 다른 이는 와인의 맛을 느긋하게 즐긴 뒤

다음 잔을 마시기 위한 준비 동작의 일환으로

별생각 없이 안주를 집는다.


뭐 정답은 없다. 당신이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와인과 음식을 즐긴다면야.

다만 너무 빨리 와인을 삼켜버리고 너무 바로

안주를 먹게 되면 준비한 와인이 가진 고유의

풍미를 즐기는데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빨리 와인과 안주를

먹는 건 당신의 장 건강에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당신의 정신을 빨리 취하게 만들고

당신의 몸을 많이 찌우게 된다.

지양할 일이다.


정답은 없다고 했지만 추천하는 방식은 있다.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잠시만 그대로 있어보자.

조금 더 과감하게 나간다면 가글 하 듯

입안 전체로 와인을 돌려봐도 좋겠다.

(그렇다고 진짜 화장실에서 가글하 듯 심하게는

말고… 앞으로 일행 없이 혼자서 와인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입안을 와인으로 코팅했으면

가볍게 머금은 와인을 삼키고,

지금 내가 마신 와인이 어떤 맛이었는지,

향은 어떠했는지 살짝 떠올려보자.


어려운 표현, 상투적인 와인 용어들은

지금 당신에게 필요 없다.

나에게 맞는 와인인지 아닌지부터 시작하자.

그럼 된 거다.


검은 베리류의 과일향, 스파이시한 후추향…

그래 뭐 여기까진 그래도 이해한다 치지만.

그을린 나무향, 가죽향을 지나 부싯돌향이나

고양이오줌향, 젖은 양털향으로 넘어오면

이게 당최 어떤 향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당신이 와인이 표현하는 모든 향을 다 맡을 수 있는

와인 스페셜리스트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꿈은 잠시 접어두자.

차라리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꿈은 어떤가.

그건 적어도 내가 한 표 찍어 줄 수는 있는데…     


두 번째로, 안주를 먼저 먹고 와인을 마시는

스타일이다.

이 유형도 많진 않지만 상당수 존재한다.

음식의 기름기를 술로 씻어낸다는 부류도 있고,

음식이 가진 고유의 맛을 와인이 극상으로

이끌어준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와인보다 안주에 진심인 부류다.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그래서 늘 풍요롭다.


이들은 안주가 떨어지는 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으며, 설사 잠깐의 방심으로 안주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하여도

이들의 상황 대처 능력은 기가 막힌다.

어떤 카테고리의 식당에서 건 가장

빨리 나오는 음식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피해야 하는 메뉴가 무엇인지를

거의 지뢰 찾기 하듯 발라낸다.


다만 이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의 비용은

늘 내 예상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부류와 약속이 잡혔다면 미리 각오하고

출발하는 것이 당신의 정신 건강에 좋다.

특히 통장 잔고의 숫자 변화에 민감한 당신이라면

너무 자주는 어울리지 않도록 하자.

당신의 통장에 적혀 있는 잔고 숫자는 줄어들고,

당신이 올라가 있는 체중계의 숫자만 늘어나는

기(奇) 현상을 겪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세 번째는, 안주와 술을 동시에 먹는…

아니 진짜로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니다.


후배 P가 이 유형이다.

특히 고깃집에서 P의 유형은 빛을 발한다.

쌈을 한 장 집어 물기를 탈탈 털어내곤 곱게

손바닥 위에 펴 놓는다. 평평한 쌈 위에 견고하게

고기 세 점을 올린다.

(꼭 세 점이다. 두 점도 아니고, 네 점도 아니다.

이유를 물어봤지만, 피식 웃을 뿐 답을 안 해준다.

뭐 신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본인도 딱히 구체적인 이유는 없어

답을 피한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으로 파무침이나 쌈장과 같은 토핑들을

그때그때기분에 따라 마무리로 추가한 후

야무지게 한 쌈 크게 입에 넣는다.

이때 그의 비어 있는 다른 한 손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다.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반드시 다른 한 손엔 술잔을 들고 입 근처에

배치시키고 있어야 한다.

보지 않고도 바로 입으로 향할 수 있도록.

쌈이 입안으로 입성함과 동시에

잔이 함께 들어간다.


그렇게 먹으면 고기 맛도 와인 맛도 제대로

못 느끼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왜 고기 세 점이어야 하는지를 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피식 웃을 뿐 답을 하지 않는다.

뭐 본인만의 취향이겠지만…

그래, 존중한다. 너의 취향.


마지막으로, 안주를 먹지 않는 유형이다.

같이 마시면 좋을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있는

유형이다. 맛있는 안주를 나 혼자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안주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와인만큼이나 안주에 진심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기가 세 번째 유형이나 이 유형이나

매 한 가지다.

뭐 굳이 장점을 더 찾아보자면 돈은 절약될 것

같지만, 절약한 돈만큼 와인을 더 먹거나,

좀 더 비싼 와인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딱히 그렇지도 않다.


와인은 경험의 술이라고 했다.

그 경험에는 어떤 음식과 함께 먹어보느냐도

매우 중요한 순위로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 음식과도 먹어보고 저 음식과도 먹어보고,

치즈만 해도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달달한 치즈, 고소한 치즈, 꼬릿 한 치즈…

종류별로 짝을 지어먹어보자.

당신의 와인 생활이 당신이 페어링한 와인과

음식의 경험만큼 더욱 풍요로워지리라.


그럼 오늘도 당신의 하루를 당신 만큼이나

멋지게 살아내며 금요일 밤의 자유를 만끽하시길.

아, 이번화의 제목도 잊지 말고 염두에 두심이…    



* 와인과 함께하는 음식과 관련된 용어로

페어링과 마리아주가 있습니다.

페어링은, 네 맞습니다.

당신의 아이폰에 에어팟을 페어링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와인의 풍미를 더 살려 줄 음식을

짝지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와인과 치즈를 페어링하고,

화이트엔 해산물을, 레드엔 육류를 짝짓는 것,

좀 더 세부적으로는 붉은 육류엔,

특히 양고기와는 말벡 품종을 페어링 하는 편이고,

치킨과 같은 흰 살 고기와 생선류엔 화이트를,

특히 생굴이나 회를 먹을 때는 산미가 있는

소비뇽블랑 품종을 페어링 하는 편입니다.

굴에 레몬즙을 뿌려 먹는 걸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어떤 와인과 어떤 음식을 페어링 할지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모두가 같을 수도 없고,

또 같을 필요도 없으니까요.

저는 레드와인에 회도 종종 먹습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마리아주(marriage)는, 영어의 marriage와

발음이 유사한 데서 살포시 추측할 수 있듯이,

프랑스어로 결혼을 의미합니다.

와인과 음식의 결합을 프랑스에서는

결혼에 비유하여 사용할 만큼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 진심이라는 뜻이겠지요.

페어링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영어로는 ‘페어링’, 프랑스어로는 ‘마리아주’.

둘 중에 편한 용어로 사용하시길.


** 그래서 부대찌개와 어울리는 와인은?

부대찌개는 대부분의 레드와인과 맛있게 먹습니다.

아, 물론 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와인으로 하나 추천해 드린다면

‘도피오파소 프리미티보’ 추천드립니다.

한식엔 보통 피노누아 품종이 잘 어울린다고

하는데, 프리미티보 품종도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역시나 살짝만 훑고 지나가자면,

프리미티보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지방의

포도 품종으로 적당히 당도도 있고,

바디감도 있는 편입니다.

아, 그리고 혹시 와인 코너에서 미국 와인 중에

‘진판델’ 품종을 보시면 ‘프리미티보’와 같은

품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전자 분석을 했더니

같은 품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상시가 만원 후반, 할인가 만원 중반으로 주로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와인으로

접근성, 가성비 둘 다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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