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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pr 08. 2024

연어라이팅

연어라이팅이 되어버린 나비를 아시오?

둘마트에서 연어 할인을 한다고

동거인이 카드를 내민다.


벚꽃 시즌이라 집 앞에 따릉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한가득 안고 나왔는데

다행히 두 대의 따릉이가 남아있다.


이젠 연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한가득 안고 숨도 안 쉬며 페달을 밟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어 매대 앞에 뛰어 들어오니.


무려 40% 할인!


진열된 연어 중에 제일 예쁜,

그러니까 지방층이 굵고 길게 사선으로 뚜렷한

두 개의 팩을 들고 장고에 들어간다.


하나는 이만팔천 원

다른 하나는 이만 원


물론 세일전 가격이니 40% 할인 후 가격을

속으로 재빨리 계산해 본다.


하나는 만칠천 원

나머지 하나는 만이천 원


무게와 가격 표시를 번갈아 바라보며

장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많이 먹고 싶은데 큰 걸 사?

큰 거 사 왔다고 뭐라 그러면 어쩌지?


둘마트 ‘어쩌고 데이’라 평소보다 훨씬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병약한 미중년의 한 남자가

생연어 두 팩을 들고 깊은 사색에 빠진다.



우리 집 동거인들은 다 연어를 좋아한다.

특히 초딩은 제 몫을 미리 나눠놓지 않으면

준비된 연어를 혼자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연어광이다.


물론,

자식 사랑 수준이 대한민국 평균에 수렴하는.

보통의 평범한 애비를 자부하는 나로서는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지만,

5학년 평균 몸무게를 예전에 넘겨버린

초딩의 건강을 생각하면 고열량의 연어를

마음껏 먹게 내버려 둘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키도 5학년 평균 키를 훌쩍 넘겼으니

괜찮다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연어 같은 먹이사슬 상위 포식자의 몸속엔

축적된 중금속 함량이 매우 높으므로

역시 초딩의 연어 섭취량을 자제시키는 건

평균적인 부성애를 가진 애비로서

매우 옳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가 더 먹겠단 소리다. 


이처럼 연어를 좋아하는 가족이지만

마트에서 연어를 구입할 때면 동거인은

늘 약간 모자라게 구입하는 편이다.


이 정도면 우리 셋 먹기엔 충분하지 않아?

그건 좀 많지 않을까?

아니야, 저건 많이 남을 것 같아!


마트에서 연어를 구입할 때마다

늘 이런 연어라이팅을 당하다 보니

혼자 온 마트에서, 이 절호의 찬스에서도

결정을 못 내리고 양손에 생연어 한 팩씩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래 이걸로 하자!

장고 끝에 악수 둔다더니 드디어 결정을 내리고

오른손에 든 놈을 진열대에 다시 내려놓는다.

왼손에 든 놈만 장바구니에 넣어 계산대를 향하면서

그게 또 못내 아쉬워 몇 번을 뒤돌아 본다.

다음엔 꼭..


무인계산대에 연어를 올려두고 바코드를 찍는다.


삐익.

모니터에 가격이 표시된다.


이만 원.


아니! 기계 양반!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요!

내 분명 40% 할인 문구를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는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으니

예삿일이 아니라고 판단됐는지 직원 한 분이

재빨리 내 옆으로 다가온다.

연어와 모니터를 번갈아 가리키며

벙어리 삼룡이처럼 어버버거리고 있으니

이런 삼룡이들이 한 둘이 아닌지

가벼운 미소로 친절하게 한 마디 해주시고

오실 때처럼 재빨리 내 옆을 떠나간다.


“회원 인증하시면 자동 할인되세요 고객님”



계산한 연어를 따릉이 앞바구니에 잘 넣어두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연어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시원섭섭하다.


길고 긴 고민을 하긴 했지만

결국 연어를 샀다는 시원함과,

하지만 오늘도 결국 더 큰 연어는 사지 못했다는

섭섭함이 공존한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에 들어서자

밟던 페달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연어라이팅이 되어버린 나비를 아시오?


연어야 다시 팔아라.


사자. 사자. 사자. 한 뼘만 더 사자꾸나.


한 뼘만 더 큰 놈으로 사보자꾸나.



갑자기 하늘에 연어 한 마리가 헤엄을 친다.

다음엔 꼭..



*구독자 1,000명 기념 글이 이리 누추하여

죄송합니다.

언젠간 저도 세계평화 같은 초거대 담론을 주제로

기승전결이 팍!

서론 본론 결론이 딱!

명쾌한 문장과 품격 있는 단어로 글을 쓰는 날이

올… 거 같진 않아 늘 죄송할 따름입니다.


항상 그렇듯,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 와주시니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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