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계획으로 세탁하는 법

2025년 건강검진

by 박노아


"숨 참으시고오, 숨 쉬세요~~"


건강검진 차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엑스레이 촬영실 앞, 남자 간호사는 쉴 새 없이 같은 말을 한다.


"숨 참으시고오, 숨 쉬세요~~"
"생년월일 말씀해 주세요!"


로봇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열 번 이상 같은 말을 하는 중이다.

정말 중요한 작업인데, 그들에게는 단순 노동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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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리는 소음


한 사람은 열심히 같은 말을 외치고,

다른 두 사람은 일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잡담으로 소음을 더한다.


"점심은 뭐 드실 거예요?"
"이건 어때요?"


검진자들을 앞에 두고 일상의 잡담이 묘하게 불편하다.

그들의 대화는 협주곡 도중 박자를 놓친 첼로소리처럼 튀어 오른다.


문득 사무실에서 내가 틀어 놓은 백색소음용 클래식이 떠올랐다.

그것도 누군가에겐 놓친 박자처럼 들리려나?


'내일은 볼륨을 살짝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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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의 발견


건강검진은 오전 10시 정도가 한가하다.

모두 밤새 금식했다가 새벽같이 달려와 서로 '1등'을 다투니 병원은 늘 쨈(Jam) 상태다.

8시부터 대기했지만, 사람들은 바글바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마법처럼 해산되는 것을 보니,

다음번엔 10시에 예약을 해야겠다.


재미있는 건 시간대별로 사람들의 연령대가 다르다.

이른 아침엔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고,

시간이 흐를수록 연령대가 점점 낮아진다.


10시쯤 나타나는 젊은이들 덕분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들에게는 지금이 하루 중 가장 빠른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토요일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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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이후의 검진


5년째, 건강검진을 미루고 미루다 항상 12월에 하게 된다.

그것도 12월 20일 이후. 하하.. 간호사들이 엄청 싫어한다고 들었다. (죄송)


그동안 게으른 나를 책망했지만, 올해부터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1년을 열심히 살아내고

12월에 결산하는 마음으로 검진한다면,

이건 1년을 잘 마무리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내년에도 역시 12월 20일 이후 어느 날 검진을 할 것이다.

이번엔 시간까지 정했으니 얼마나 계획적인가

1년 치의 계획을 미리 세운 나.. 칭찬한다.


'게으르다'는 마음은 이제 잘 접어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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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연락이 없다


남편과 아들은 내가 건강검진을 하는지도 모르나 보다.

분명히 말했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다.

괜한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내 위치를 GPS로 공유해야 하나?'

살짝 서운함이 들었지만, 어차피 인생은 혼자니까 뭐 그러려니.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도 어리광을 부린 적이 없다.

늘 혼자 잘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적당히 이용도 하고, 나 편한 대로 조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내 손발이 편했을 텐데...,


그러나, 도저히 마음에 내키지 않는 모습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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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는 전화벨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짜장면 시킬 건데 뭐 드실 거예요?? 검진 거의 끝났을 텐데... 지금 시킬게요.."


음..
엄마에게 관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군.

잠시 흐뭇한 마음에 나도 외쳐본다.


"나도 짜장면.. 그리고 탕수육!!"





어차피 인생은 혼자지만,

가끔 울리는 전화 한 통이면

충분히 따뜻하다. 탕수육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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