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당당하게 키우는 전략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불쑥 같은 반의 남자아이가 자꾸 장난을 치며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려다 말고, 아차 싶은 마음에 표정을 바로잡았다. "다음에 또 그러면 '이렇게 장난치면 불쾌해. 하지 마.'라고 말해줘. 그게 기분 나쁜 행동인지 모를 수도 있어."라고 말해줬다. 내가 이 이야기를 회사 동료에게 들려줬더니, 그 역시 마찬가지로 "그 남자애가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웃었다. 일종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짓궂게 군다', '여자가 한 번 튕겨보는 것은 거절이 아닌 호감의 표시이다'와 같은 말은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의사결정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도록 하고 여성에게는 남성의 폭력을 쉽게 수긍하도록 만든다. 비단 여성에게뿐 아니라 한국사회는 폭력 전반에 매우 관대하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에는 좀 가둬서 팬들 그게 뭐 대수냐 생각했고, 술 마시고 사람을 때리면 취했으니 봐주자, 남편이 아내를 때리면 집안일이니 어쩔 수 있겠느냐, 선생이 학생을 때리면 말 안 듣는 데는 매가 정답이다 생각해왔다. 그나마 폭력에 민감해지고 엄격해진 오늘에 이르러서도 애들끼리 좀 때리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남자애가 여자애를 괴롭히면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니 귀엽게 봐줘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너무 거창하게 시작해버렸지만, 좋아하면 잘해주는 것이 맞다. 좋아한다고 해서 괴롭히는 행동을 한다면, '어이구, 귀엽네' 생각할 게 아니라 행동을 수정해줘야 한다. 은연중에 아이들 앞에서 늘어놓는 이런 식의 편견들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친구가 괴롭혀서 불편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아이에게 걔가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해주는 순간, '아, 다음에 괴롭히면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일종의 지침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교육은 거반 '분위기'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어린이들은 말귀를 잘 못알아먹는다. 대신 '책 읽는 분위기', '조심하는 분위기', '배려하는 분위기',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분위기', '해야 할 일은 미리 해놓고 쉬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아이 습관도 좌우된다. 부모가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데 아이 혼자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는 집은 없다. 엄마 아빠가 사사건건 너는 이게 잘못이고 너는 저게 잘못이고 다퉈대는 분위기에서는 아이도 쉽게 남 탓을 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해진다.
따라서 아이들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갖추어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단순히 생활습관이나 예의범절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에 있어서는, 비단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잘 형성되는 것이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다. 최근 페미니즘 이슈가 큰 갈등의 기준이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간, 명절에 음식 하고 애 낳으면 휴직하고 부모님 편찮으시면 간호하고 집에서 빨래하고 빨래하고 나면 청소하고 청소하고 나면 밥하는 걸 여자들이 하는 분위기였다가, 이제 남자도 명절에 음식하고 애 낳으면 휴직하고 부모님 편찮으시면 간호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하는 걸 좀 같이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자 그럼 니들도 군대 가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아재들과 달리, 나도 여자 형제들과 똑같이 밥 하고 청소하고 빨래도 하며 컸는데 도매급으로 매도당하는 20대 남성들의 분노도 커질 수밖에 없다.
누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갈등은 자연스럽게 좀 더 발전된 논의를 양산하는 법이고,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갈등조차 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한 번씩은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부쩍 취향이 고루(ㅋ)해진 첫째는 무늬 없는 편한 상의에 라인 없는 청바지가 아니면 입지 않기 시작했다. 이미 유치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공주나 발레리나가 그려진 옷들을 '유치하다(유치원생 주제에!)'며 입지 않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급진적인 반캐릭터주의자가 되어서는 일단 뭐가 새겨져 있다 싶으면 옷 입기를 아예 거부했다. 그 와중에 아직은 초딩이라서 손으로 쓸어내리면 색이 바뀌는 양면 스팽글 티셔츠만큼은 즐겨 입었다. 무늬 있는 옷은 싫어하면서 거대한 하트 스팽글이 번쩍이는 상의를 입고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이중적인지 몰랐다(한 번은 제 아빠가 '개초딩'이라며 놀리자, "그럼 아빠는 개어른이야?"라는 패륜적인 발언을 해 혀를 끌끌 차게 만든 일도 있었다).
키는 또 얼마나 부쩍부쩍 크는지 한 철 입었던 옷을 다음 해에는 입지 못해 계절이 바뀐다 싶으면 매번 새 옷을 사야 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다가오자 입을 옷이 없어 옷을 사러 가게 되었다. 아이는 성인 라인까지가 모두 출시되는 ㅈ브랜드의 옷을 좋아했는데, 크게 요란하지 않으면서 어딘가 세련되어 보인다는 게 그 브랜드의 옷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올해는 또 후드티에 꽂혀서 ㅈ브랜드에서 나오는 후드티를 사야겠다길래 매장을 찾았다. 마침 후드티는 없고, (고루한) 노르딕 무늬의 스웨터 하나는 마음에 들어 찜콩 해두고는 옆 매장에는 후드티가 있는지를 보러 ㅇ매장으로 이동했다.
역시 성인 라인도 출시되는 매장이어서 1층에 있는 여성복 코너를 지나 2층에 있는 키즈 매장으로 올라갔는데, 일단 입구에 진열된 옷들부터가 휘황찬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온갖 레이스에 주렁주렁 달린 반짝이며 털이며 리본이며 요란하기 그지없었고, 이제 곧 2탄이 출시 예정인 겨울왕국 캐릭터가 난립해 온 매장이 '렛잇고~'라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 아이는 별말 없이 여아 매장과 남아 매장을 쭉 돌고 나더니, 불쑥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이 매장은 우리 여자 어린이들을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이고, 여기 우리 둘째가 좋아하는 옷 한 바가지나 있네' 생각하며 뭘 좋아할까 눈으로 고르고 있던 나는, 왠지 뜨끔해져서 아이에게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반문했다. "응. 유독 여자 아이들 옷에만 불편한 장식들을 한 가득씩 달아놨잖아. 엄마 밑에서 올라올 때 여자 어른들의 옷에 이런 반짝이 달려 있는 거 봤어? 저기 남자 애들 옷만 봐도 입고 뛰기 좋은 옷들밖에는 없잖아. 이런 레이스를 입고 뭘 해." 아이는 자존심 상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반복해서 '이곳 ㅇ매장은 우리 여자 어린이들을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확인을 구했다.
'겨울인데 둘째한테 이런 반짝이 구두는 좀 춥겠지' 생각하던 나는 걔가 하도 그래 대는 통에 구매를 포기하고 매장을 나왔다. 우리는 쇼핑몰 내에 다른 진열대들을 몇 군데 구경하다가, 아무 무늬 없는 펑퍼짐한 후드티를 발견하고는 입어보지도 않고 바로 구매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o매장에서 본 여자 아이들의 옷은.. 뭔가 메시지가 남달랐다. '너도 이런 옷을 입고 공주가 되어 봐! 멋지게 춤을 추고, 우아하게 티 타임을 갖는 거야!'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다가 술래의 등을 치고 미친 듯이 선 안으로 뛰어갈 때 입는 옷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이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는 남성이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만큼이나 무의미한 시절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화장실의 유머러스한 경고 문구도 이제는 성차별적인 메시지가 되어버렸다. 남자아이들도 슬프면 울어야 한다. 그것과 같은 선상에서, 여자아이들의 옷도 남자아이들의 옷만큼이나 실용적이고 활동적이어야 한다. 너무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으나, 아이들이 자라는 세대의 롤모델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비전에 나와 국가 정책을 발표하는 장관들의 얼굴 중에 비즈니스룩 차림의 여성들이 많아지는 것도 나는, 자녀교육의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혹시 너무 이분법적인 글로 읽히진 않을지 다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딸아이의 말이 맞다. 여자 어린이들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1850년대, 아멜리아 블루머가 처음으로 바지 입기 운동을 벌이던 시절, 여자들은 코르셋을 입느라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하는 시대를 살고 있었다. 분위기란 그런 것이다. 갈비뼈가 부러지더라도 예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고르는 분위기에서 신나게 공을 찰 수 있는 옷인지를 고민하는 분위기로 나아가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우리 여자 아이들을 순진하게만 키우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