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오늘 Nov 06. 2019

처음으로 너와 함께 떡꼬치를 먹던 날

우린 정말 애써왔으니까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 부부도 다른 많은 맞벌이 부부처럼 적어도 3년, 엄마인 내가 회사를 쉬고 아이를 봐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현실적으로 남편의 보수가 많았고, 내 직종이 상대적으로 재취업을 하기에 용이했다. 출생 후 3년, 주양육자와 제대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의 경우 '세상은 냉혹한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고 했다. 얼마나 꿈꿔왔던 아인데, 자신이 누려야 할 사랑을 마땅히 누리며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자신도 멋진 무언가가 되어 더 멋진 세상의 일원이 되리라는 꿈을 품어 마땅했다. 양가 어른들이 모두 생업에 종사하고 계셨고 물리적인 거리도 멀었기 때문에 꼼짝없이 주양육자는 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일이 꿀처럼 달던 때였다. 책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잠들기 전이면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얼른 사무실 책상에 앉고 싶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육아휴직 대신 퇴사를 하는 것이 맞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함께 고민했던 남편이 그러나 뜻밖의 말을 했다. "솔직히 저도 여보가 집에서 아이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잘 해내고 있잖아요. 여보가 아까워서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왈칵 눈물이 났다. 나조차도 내가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던 순간에 누구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들려준 신뢰이 표현이었다. 그랬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면 내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어쩔 수 없이 겪는 불편을 감내하도록 하자고 결정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주자고, 우리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느 순간에라도 알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했던 여러 가지 지침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었다. 만나야 하는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도록, 입으로 하자고 했던 것이 정확히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단 아이와 약속이 되었으면 다른 어떤 일정보다 아이와의 약속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남편은 아이와 저녁을 먹기 위해 퇴근 직후 달려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 뒤늦은 밤 다시 출근하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그 어린아인데도 부모가 자기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명절에 만난 친척 어른이 엄마 아빠가 왜 좋은지 물어보자, '우리 엄마 아빠는 약속을 잘 지켜요'라고 대답한 일도 있었다.


집에 일거리를 들고 와 보고 있으니 아이가 힘내라고 식빵 위에 누가바를 올려 만들어줬다 ㅋ 꿀맛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부모 심은 데 자녀 나오는 법이라고,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대로 크게 되어 있다. 타고난 기질과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타고난 기질과 주변 환경을 결정하는 요소 역시 부모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어떠한 자세로 대하느냐는, 그 자체로 자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면, 자녀도 자신을 존중한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녀의 청소년기를 맞게 된다. 외식을 하거나 영유아들이 잔뜩 모여 있는 대혼돈의 키즈카페 같은 곳에 가보면, 아이들에게 '넌 몰라도 돼', '그만 말하고 빨리 밥이나 먹어', '내가 진짜 못살겠다, 너 때문에' 같은 말을 하는 부모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부모들이 청소년기를 맞은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런 것이다. '엄마 아빤 몰라도 돼', '아, 됐고 돈이나 줘', '아, 진짜 엄마 아빠 이럴 때마다 죽고 싶다고!(사실 나도 이런 대화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우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ㅜㅜ 때로 아이들은 진짜 미친놈들처럼 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 안다. 아무리 어려도 부모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지금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지 부당한지를 말이다. 나아가 자기 나름의 방어 체계도 구축한다. 부당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떼를 쓰기도 하고 친구를 때리기도 입을 닫아버리거나 음식에 집착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우리 아이도 당연히 부모가 모두 일을 하러 나가는 현실을 부당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가 뭘 하느라 자기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구체적으로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긴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있어야 하는지, 왜 아파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 울적하고 슬픈 날이나 날이 좋아 엄마와 놀고 싶은 날에도 참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줬고, 때때로 일터에 데리고 나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사람들과 일을 하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집에 돌아와 즐겁게 이야기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되는 일들, 예를 들어 디자인 시안이 나오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물었다.


만일 꿈꾸던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돈은, 일을 하고 난 후의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나는 맞벌이를 하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로 하여금 부모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지긋지긋한 노동을 견뎌내고 있다고 여기도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노동에 가치가 있고 그 일을 통해 삶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믿게 되면, 자녀는 당연히 부모의 노동을 응원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양육의 시간을 견뎌낼 근거를 찾게 된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납득하기만 해도,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크게 반감될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과정을 겪은 첫째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엄마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고 아빠는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실제로는 디스플레이 설계를 한다 ㅋㅋ) 회사에 꼭 나가야 한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다. 어떤 직종이든 마찬가지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옷을 만들고, 자동차를 정비하고,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꼭 필요한 물건을 파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이를 위해서 필연적으로 아이와 떨어져 일하는 노동시간이 필요하며 너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소중하지만 일 역시 그만큼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적어도 아이에게만큼은 죄인처럼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미안해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에게 내가 뭔가 부당한 일을 겪고 있구나 하는 불안감만 안길 뿐이다.


부모 중 하나가 전담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과 비교하자면, 아이가 느낄 정서적 안정성 면에서 맞벌이의 한계는 명확하다. 최근까지도, 내가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아이를 돌봤다면 우리 첫째나 둘째가 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곱씹어보곤 했다(실제로 둘째 아이가 언어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던 시기에는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남편이 휴직 중이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그래서 몇 곱절로 아이가 대견했다. 그는 단순히 자라기만 해 준 것이 아니라, 부모가 그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협력해준 파트너였다.  


아이가 입학한 첫 주의 어느 날, 나는 연차를 내고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렸다. 교실에서 나온 아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잠시 얼음이 되어 저게 엄마가 맞나 한참을 쳐다봤다. 엄마라는 확신이 들자 아이가 책가방을 덜렁거리며 나에게 달려왔는데, 정말 그림처럼 예뻤다. 아이에게, "엄마랑 뭐 하고 싶은 일 없어?" 들떠서 물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아이는 수줍게 말했다.


"나 엄마랑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꼬치 먹어 보고 싶어."


그래, 나도 너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꼬치 먹어 보고 싶어. 어쩌면 너를 키우며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함께 떡꼬치를 먹으며 걷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굶주린 초등학생과 그의 부모들이 바글바글한 분식점에 들러(아, 떡볶이집 이름이 너무 웃긴데 너무 특정된 이름이라 차마 여기서 밝힐 수가 없다. 말하고 싶어 미치겠다 ㅋㅋ) 떡꼬치 두 개를 주문했다. 우리는 양념이 곱게 발린 떡꼬치 두 개를 나눠 들고, '짠' 하고 건배했다. 해냈구나. 너도 해냈고 나도 해내서 오늘의 이 떡꼬치를 거머쥐었구나.

이제부터도 얼마나 많은 허들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웃으며 떡꼬치를 먹고 있는 우리라면, 앞으로도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함께 이겨내 본 경험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할 것이다 ㅋ.   


 

승리의 떡꼬치 ㅋㅋ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