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
나는 살림을 정말 못한다. '내가 육아에 대한 글을 써도 되나...?' 스스로 검열하곤 할 때 가장 걸리는 부분도, 내가 애들을 잘 먹이기를 해, 깔끔하게 청소를 하기를 해, 아이 학습 관리를 잘해 명문대엘 보낸 것도 아니야 하는 등등의 문제들이었다. 하다 못해 애들 소풍 갈 때 싸는 도시락을 준비하면서도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자기 애 어린이집 도시락 좀 보라며 사진을 보여줬는데, 미니언즈들이 풀밭 위에서 어서 같이 놀자며 아우성을 쳐대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도 아이에게 계란 프라이에 김을 먹이고 나온 참이었다. '그래, 나도 캐릭터 도시락이라는 걸 좀 싸 보자!' 싶어 다가온 소풍 전야에 '어린이집 도시락'을 검색해보았다. 토끼에 곰에 온갖 동물들이 난리법석을 떠는 사진들 속에서 흰밥 뭉치에 맛살 하나 얹어서 눈알을 붙여 만든 빨간 망토가 보였다. 이 정도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일 아침, 내가 그 빨간 망토 눈알을 김으로 오리면서 얼마나 욕을 해댔던지, 이제 다시 절대로 이런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아이야, 널 사랑하는 방법에는 도시락 말고도 좋은 것들이 많아'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엄마의 도시락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급식이 보편화된 세대인 나는, 중학교 때까지 도시락을 싸서 등교를 해야 했는데, 하루 일과 중 가장 싫은 시간이 밥 먹는 시간일 정도로 우리 엄마는 도시락에 관심이 없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밥을 먹는 시간이 되면, 나는 언제나 볶은 김치에 푸석한 계란말이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졌다. 김치에 계란말이여서가 아니었다. 어떤 김치에 어떤 계란말이인지가 중요했는데, 하다못해 참깨라도 좀 뿌려주지 싶은 제대로 썰지도 않은 김치에다가 끄트머리를 잡고 들어 올리면 힘없이 줄줄 풀려버리던 말도 안 되게 두꺼운 계란말이는, '네가 받는 사랑의 크기는 고작 이 정도야' 하고 머리에 쾅쾅 때려 박는 듯한 모양새였다.
남편을 만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안동댐 인근 수몰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남편이 자기 어린 시절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내륙지방 한가운데서 배를 타고 초등학교 등하교를 했던 가난한 형편의 남편이었다. 그렇게 가난하게 자랐는데도 자기는 자기 집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매우 늦은 나이에 알았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머님이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가서 더덕을 캐와 아침마다 구운 더덕을 반찬으로 주셨다고 했다. 남편은 지금도 구운 더덕을 좋아한다. 그때 먹었던 더덕 맛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고 더덕을 먹을 때마다 얘기하곤 한다.
가난도 덮어버리는 엄마의 사랑. 나는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없다, 고 말해도 엄마는 딱히 섭섭해하지 않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뭘 막 소름 끼치게 챙겨준 적은 없지? 한 번 되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엄마도 그렇게 바쁜 와중에 니들 밥 해줬지 빨래해줬지 청소해줬지 뭘 더 바라냐 말씀하실 수도 있다. 만약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래도 한겨울에 애 교복을 안 말려놔서 젖은 교복 바지 입고 등교하게 둔 건 좀 심하지 않았어?'라고 못되게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 덜 큰 것이다.
애가 애를 낳아 키운다는 말을, 보통은 좀 앳되어 보이는 부모가 애 들쳐 안고 다닐 때 많이 쓰곤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애가 애를 키우는 모양새로 평생을 살게 된다. 한 번은 <아침마당>이라는 프로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출연한 것을 보았는데, 올해로 80을 맞으신 어르신 한 분이 명절 하면 떠오르는 일을 두고 다섯 살 때 엄마가 내 꼬까옷은 안 해주고 동생 꼬까옷만 해준 게 그렇게 섭섭했다면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존재다. 내게 사랑을 덜 준 것이 너무 섭섭하고 속상해서 나이 80이 되어도 잊히지 않는 그런 존재. 화수분처럼 계속해서 사랑을 뽑아줘야 하는데, 매번 그걸 못해서 아이를 울리고 속상하게 만들고는 하는 존재. 그러면서도 슬프면 보고 싶고, 화가 나도 보고 싶고, 서러워도 보고 싶고, 아프나 외로우나 보고 싶은 존재.
여하튼 내 딸들도 한참을 자란 후에 우리 엄마가 맨날 계란 프라이에 김만 줬다고 슬피 울 것이 안쓰러워서, 나도 어떻게든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여 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다른 많은 것들과 달리, 요리라는 것에는 특수성이 있어서 내가 먹어본 기억, 만들어본 기억, 만드는 걸 본 기억이 있지 않은 이상 어떤 음식을 특별히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기도 어려웠다. 일단 요리를 하려면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생각나는 음식이 없었다. 더욱이 영유아들이 먹을 음식이라 간을 하지 않는 음식 중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만한 음식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식부터 시작해서 아이 간식과 식사를 위한 책도 몇 권을 사다가 봤는데, 비싼 재료 한가득 사다가 한 입 먹이고는 맛없다고 못 먹는 걸 버리기를 몇 번을 했나 모르겠다.
결국 생선, 미역국, 뭇국, 계란말이, 김, 멸치볶음의 무한반복이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나마도 국 두 종류 반찬 한두 개를 매번 육수 내서 지지고 볶아 아침저녁 다른 찬을 먹게끔 준비했는데, 둘째 사회생활 시작 후에는 그나마도 포기하고 국도 사다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둘째는 국에 만 밥이 아니면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지가 젓가락을 들어 먹는 반찬은 계란 프라이 흰자와 멸치볶음이 유일했다. 얼렁뚱땅 식사를 마치고 나면 죄책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 나도 다른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보기도 예쁘게 맛도 좋게 영양가도 넘치는 식사를 차려주고 싶다!!! 어떤 때는 너무 절망적이라 눈물도 찔끔 나왔다.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요란하게 대단한 거 말고, 음식이 맛있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나도 쟤네도 이번 기회에 배워나간다고 생각해보는 거야. 그래서 콩나물을 무쳐봤다. 소금 넣고 끓인 물에 다듬은 콩나물을 넣고 뚜껑 닫은 채로 5분을 삶았다가 1분 뜸을 들이고, 찬물에 헹궈 쫙쫙 물기를 뺀 다음에 애들 손에 요리 장갑을 끼게 하고 소금 두 꼬집, 참기름 반 숟갈을 각각 넣게 했다. 다진 파 반 티스푼에 참깨 두 꼬집 뿌린 뒤에 한 번씩 사이좋게 조물조물해보랬더니 둘이 신나게 달려들어 콩나물을 파김치로 만들어놓았다. 한 입 먹어봐. 둘째에게 말했다. 애가 한 가닥 콩나물을 들어 올려 아 하고 입에 대더니, 띠용 하고 눈을 왕방울 만하게 떴다. 그러고는 엄지 손가락을 척척 들어 올렸다. 그 자리에서 국 하나 옆에 끼고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밥에 초콜릿을 뿌려놓지 않는 이상, 앉은자리에서 밥 한 공기를 비우는 일은 우리 둘째 인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콩나물도 먹고 시금치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팬케이크를, 저녁에는 김치전을 뒤집게 했더니 맛있다고 엄치 척척 거리며 잘도 먹었다. 요리조리 귀신같이 양파만 쏙 골라 뱉어내기는 했으나, 일단 심이섬유 비슷해 보이면 일절 입에 안 대던 아이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진보였다. 걔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을 빼면, 딱히 손이 가는 맛도 아니었다. 단순히 애가 크기 시작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종류가 많아진 탓도 컸다. 한 번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대서 물에 헹군 김치를 잘게 썰어 따로 기름에 볶지 않고 햄에서 나온 기름으로만 양파랑 볶아 내줬더니 그것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먹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너무 궁금해서, "진짜 그게 맛있어?"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첫째가 대답했다.
"엄마가 열심히 만드는 걸 봤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맛있지."
문득 결혼하기 전 남편 앞에서 요리 잘하는 사람인 것처럼 굴고 싶어 했던 때가 떠올랐다. 나물을 좋아한다길래 두릅을 데쳐 이렇게 저렇게 한상을 차려서 초대했는데, 엄청 맛있게 싱글벙글하면서 먹길래 '와, 진짜 맛있는가 보다' 한 입 먹어보고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여줄 줄 아는 능력. 그 능력을 딸이 고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래 놓고 보니, 다시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실패했던 그 많은 음식들. 갓을 넣고 담가 보라색이 나던 물김치, 돌처럼 딱딱했던 벽돌 모양의 초콜릿, 한 번 만들고 다시는 만들어준 적이 없는 파운드케이크, 아침에 학교 가야 하는데 칼슘이 많이 들었다며 먹고 가라던 아이스크림... 내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밤에는 문득, '근데 너 나중에 신랑감 데리고 오면 나 요리 못해서 어떻게 하니?' 하고 정말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묻기도 했더랬다. 엄마도 노력했던 그 많은 순간들이 있었는데, 왜 난 저 아이처럼 엄마에게 엄지 척척 내밀며 맛있다고 거짓말해주지 못했을까.
엄마는, 20년 전 자신의 걱정이 무색하게 지금은 뚝딱뚝딱 만드는 것마다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금손이 되었다. 그때, 엄마에겐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걸 해내고 싶어서 차마 요리에서 그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 꿈들이 다 노쇠하고 난 후에 요리에도 맛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엄마의 인생이 너무도 안쓰럽다. 그러면서 고맙고. 희생을 해야 고마움을 받는 존재, 그게 부모인가봉가.
*여담 하나. 남편은 요리할 때 정말 깊은 정성을 쏟는다. 한 번은 아침에 애들이 계란말이가 맛있다며 먹고 있길래 봤더니 뭐 거뭇거뭇한 게 끼어들어가 있었다. 이게 뭔가 하고 한참 보다가 한 입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는 것이었다. 여보 이게 뭐예요? 물었더니, 남편이 새로 산 재료라며 통 하나를 내밀었다. 맙소사. 트러플 소금이었다. 애들 계란말이에, 트러플 소금을 넣은 것이었다!!!!! 역시, 요리는 재료인가.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