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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Nov 01. 2019

아이는 엄마라서 엄마를 좋아한다

스펙 따윈 필요없어

사회생활을 여러 해 해보니 모든 관계의 관건은 컴플렉스다.

상대가 어떤 컴플렉스를 안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기만 해도, 소모적인 감정 충돌이나 왜곡된 의사결정을 피할 수 있다. 나는 비교적, 컴플렉스가 적은 편에 속한다. 스스로에 대한 크고작은 불만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어디를 뜯어고치고 싶다고 마음먹어본 적은 없다. 못생겼지만 괜찮고 모난 데는 많아도 바꾸고 싶지는 않은 상태랄까. 단점들을 열거하자면야 수도 없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좋다.


그런 내가 거의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가 하나 있는데 학벌 컴플렉스다. 그나마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에 생긴 것인데(나는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첫 출판사에서 일이 서툰 데다 태도도 좋지 않아 사수와 이런 저런 갈등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새로 사람을 뽑으며 '너는 **대 나와서 가르치는 데 1년이 걸렸으니, 서울대 나온 걔는 6개월이면 되겠지?'라는 사수의 말을 들은 것이 발단이었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태어나서 그때 처음 들어봤다. 뭔가 모욕적인데 웃기고 불쾌한데 기발하다는 생각도 드는 그런 종류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이후로 이전까지 딱히 관심도 없던 상사와 동료들의 출신대학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 정도 대학을 나오면 좀 먹어주는 건가? 싶은 궁금증도, 나온 대학에 따라 상대가 달리 보이는 내면의 색안경도 생겼다. 누가 어딜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상태로 회복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런 오늘에 와서도 깨지지 않은 동경 하나는 바로 서울대, 도쿄대, 하버드대, 베이징대 같은 원탑에 대한 로망이다. 거길 나와 이상한 짓하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딱히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 정도의 지원과 환경 속에서 공부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가 죽었다. 하필 직업은 또 편집자여서 국내든 국외든 소위 서도하베(방금 내가 만들었다 ㅋㅋ) 출신들의 원고를 편집하게 될 때면 그 유별난 사람들의 관점과 에피소드에 묘하게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거길 가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일본에 있는 여러 출판사를 방문하게 될 계기가 있었는데, 3박4일의 출장 기간 중 반나절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쇼핑몰을 가거나 서점엘 갔어도 되고, 아기자기한 카페나 미술관을 구경했어도 됐는데, 이상하게 도쿄대에 가보고 싶었다. 어디에든 잔뜩 열중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데서 공부를 하길래 한국에다 그렇게 판권을 팔아댈까 궁금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인근 역에서 내려 학교 담벼락을 따라 정문까지 20여 분을 걸어들어갔는데, 그 길에만 분야별 전문서점들이 예닐곱 군데나 있었다. 반대편 담벼락에도 이 정도의 서점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을 때, 한 개 대학을 둘러싸고 열다섯 군데의 서점에서 매일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책을 팔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얼굴보다 택배 박스를 더 자주 대면하는 오늘같은 때에, 사람의 선명한 얼굴을 보며 한 권의 책을 사고판다는 것은 지적이고 건강한 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사회구성원 전원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점이 살아 있는 사회에서는 인간도 즐겁게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도쿄대는 인상적이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어린 둘째가 좀 섭섭해하더라도, 첫째와 둘이 도쿄대를 가봐야지 생각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어느 날 나타나 엄마의 사랑을 도둑질해간 천둥벌거숭이 둘째에게도 언제나 '넌 귀여워서 좋다'고 말해주던 첫째였다. 걔에게 뭘 해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둘이, 다른 어떤 것 고려하지 않고 느긋하게 걷고 먹고 얘기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아이에 대한 선물이라기보다는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로 키워낸 나에 대한 선물이었다. 아주 옛날,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를 보고 생긴 로망도 한 몫을 했다. 4월의 벚꽃 흩날리는 교정에서, 과거의 그 첫사랑은 아니지만, 내 배로 낳은 첫사랑과 같이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학교와 회사를 일주일 쉬고 도쿄로 떠났다.


그래서 도쿄대엘 갔는데, 정문에서부터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필 도쿄대학 현판 옆에서 중국인 부녀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아빠는 산만 한 배낭을 맨 채로 가이드북을 손에 들고 아이 옆에 매의 눈을 하고 붙어 서 있었고, 아이는 한손에는 뒤로 넘기는 스프링 메모장을 다른 한 손에는 필기구를 들고 주눅이 든 채로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고, 아이는 의기소침하게(순전히 주관적인 감상이다) 이를 받아적고 있었다.


나는 좀 머쓱한 기분이 되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옆에 끼고 도쿄대 정문을 넘는 봄 코트 차림의 엄마라니, 슬쩍 봐도 저 어린 애를 데리고 대학 탐방 온 극성 엄마 꼴이었다. 나는 아무라도 잡고 좀 변명하고 싶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우리 둘째가 말이 좀 더딘 바람에 둘째에게 신경을 많이 쓰느라 첫째가 좀 섭섭했을 때가 많았어서요. 근데 이번에 얘가 1학년이 되었걸랑요? 그래서 동생 없이 여행을 좀 해보자고 어쩌구 저쩌구. 할말이야 많았지만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짧은 일본어로 스미마셍 하며 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괜한 머쓱함에,나는 아이에게 왜 너랑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에 일본 출장을 왔을 때, 반나절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거든. 다른 데 갈 데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도쿄대에 오고 싶더라. 그래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여길 오는데, 몇 걸음 가면 서점이 나오고 몇 걸음 가면 서점이 나오는 거야. 와, 여긴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구나 생각하면서 학교 안을 걷다가 카페 야외 벤치에 앉았거든? 혼자 앉아서 커피를 이렇게 마시고 있는데, 저 옆 테이블에서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청년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교수님과 함께 노트북을 보면서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집중해서 듣고 또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경청하는 식으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야. 그때 뭔가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 아, 아름답구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그래서, 너랑 꼭 한 번 이곳에 오고 싶었어.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거든.


그 얘기를 나누며 아이는 코코아를 마시며 그림을 그렸고, 나는 책을 읽었다. 부는 바람이 다소 싸늘하게 느껴졌지만, 햇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했다. 우리는 얼마간 집중해서,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 아이는 내게 와서 이런 기쁨이 되었는가. 한없이 들뜨고 설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이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하는 듯 보이더니, 학사모를 쓴 들뜬 얼굴의 학생들이 이 건물 저 건물에서 나와 교정 이곳저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마침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카페 주변도 급격하게 북적이기 시작해서 아이와 나는 색연필과 읽던 책을 챙겨 다시 교정을 걷기 시작했다. 성취감에 가득찬 학사모 쓴 얼굴들. 그 얼굴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당사자보다 더 뿌듯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무엇이 될까. 아이가 저만큼 컸을 때,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까. 아이는 내게 자신의 속 얘기를 털어놓으며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의지해줄까. 아이는 그가 원하는 길을 걸어나갈 힘을 가지게 될까?


정문 가까이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오늘 도쿄대에 와서 뭐가 제일 즐거웠어?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는지는 모르겠다. 왠지 뒤늦게 본전 생각이 나 견학 온 엄마처럼 굴어본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가 왜 나랑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 설명해줬잖아.
그 얘기를 듣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어.      


발앞에 구름으로 만들어진 계단이라도 놓인 기분이었다. 그걸 밟고 한 계단 한 계단 두둥실 떠올라 이 아이와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비행기를 타고 이 머나먼 곳까지 왔어도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구나. '나는 니가 정말 좋아, 그리고 네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라고 속삭이는 듯한 말들.


 우리는 서로에게 더 대단한 존재일 필요가 없다. 나는 굳이 서울대를 나온 엄마가 아니더라도,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가 알 수 있도록 말해주는 엄마는 될 수 있다. 아이는 그것으로 충분해한다. 아이는 내 사랑을 자기 최고의 만족으로 여겨줄 줄 안다. 그렇다면 해줘야 하는 일은, 사랑이다. 어떤 날은 살림하느라 바빠 까먹는 일, 어떤 때는 하는 행동이 너무 미워 그냥 말아버리고 싶은 일, 그런데도 가슴 어딘가에서 계속 용솟음치듯 떠밀려올라오는 그 일, 아이를 사랑하는 일.

써놓고 보니 별말 아닌 것 같다가도 아이의 저 말을 다시 보니 또 사랑하려는 마음이 용솟음친다. 이런 나를, 이런 나대로 좋아해줘서 진짜 진짜 고마워. 자는 네 얼굴에, 내 모든 사랑을 보낸다. 감긴 네 눈동자에 건배. (찡긋)





    

그 순간,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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