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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늘 Sep 30. 2019

엄마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

큰 아이의 고백

남편과 나는 만난 지 일곱 달 만에 결혼해서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첫째 아이를 가졌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발달한 광대와 네모지게 각진 턱이 어딘지 모르게 광활한 초원 위를 마구 내달렸을 법한 북방 관상을 하고 있는 남편은, 회사에 첫째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린 직후, 함께 일하던 직원에게 '이런 짐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의 계획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아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의 기쁨이었다.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까지 돌이켜보건대 나는 한 번도 그 아이에게 괴로움이나 절망, 분노와 고통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타고나기를 아빠의 고요하고 온화한 성정을 닮은 아이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싶게 일하는 엄마의 감정적 소용돌이를 차분하게 돌봐주었는데, 하루는 세 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회사에서 엄청 화가 나서 키보드를 탕탕탕탕 두들기다 퇴근했다고 말을 했더니, "회사에서 키보드를 탁탁탁탁 두들겼어? 왜 그랬어. 그러지 말지."라고 대답해준 날도 있었다. 그 작은 애와 함께 어린이집 가방과 핸드백과 교정지가 잔뜩 든 에코백을 들고 걷던 그 가을의 퇴근길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안도감, 그 전쟁 끝에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작게 나와 함께 있구나 하는 놀라운 사실이 안긴 행복감은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은 형태로는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도, 둘째 아이에게 언어적인 문제가 발견되어 모두가 둘째 아이의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도,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자신의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않거나 남들보다 일찍 또는 늦게 홀로 기관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그 많은 순간에도 아이는 부모에게 불평한 적이 없다. 왜 나만, 왜 동생만, 왜 우리만 이래야 하는 거냐고 다른 아이들과 처지를 비교하며 부모를 원망한 적도 없다. 아마도 그런 아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에 더더욱 잘해내야겠다고, 한 명의 완숙한 직업인으로서 아이의 자랑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이 악물고 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하루의 일이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혁신초등학교는 학부모의 참여를 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어서 학기 내내 진행되는 다양한 행사에 학부모가 직접 참관해 수업을 돕도록 하고 있다. 마음이야 어떻든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는 개중 봉사시간이 짧은 책 읽기 도우미를 신청했는데, 그날도 아침 나절 짧게 책 읽기 봉사활동을 하고 도서관에 남아 독후활동을 위한 준비물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함께 봉사를 신청한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쉬는 시간이 되었는지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와서는 "엄마!", "엄마!" 하고 제 엄마에게 밝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는데, 나는 우리 애도 나에게 와서 저렇게 인사를 좀 해주었으면 생각하다가, 내가 도서실에 있는 걸 모르나? 다소 섭섭한 마음으로 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퇴근을 하자마자 동생을 챙겨 아이의 돌봄교실로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신발을 챙겨나온 첫째가

"엄마 나 아까 도서실에서 엄마가 다른 엄마들이랑 칼로 종이 자르고 있는 거 봤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에이, 안 그래도 엄마도 너 기다렸는데, 인사하지 그랬어. 거기서 봤으면 더 반가웠을텐데."라고 말하니

동생 눈치를 한 번 살핀 아이가 "다른 엄마들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이따가 조용히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라고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조금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한 마음으로 밤이 되길 기다렸다. 동생이 잠들고 나서, 그 늦은 시간에 집에 오고 있는 아빠를 함께 기다리는 순간이 되자,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도서실에서 엄마 뒷모습을 보다가 수업시간이 돼서 교실에 들어왔는데,
엄마 얼굴을 못 보고 교실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까
그때부터 엄마 얼굴이 너무 보고 싶은 거야.
오후 내내, 엄마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아이는 동그랗게 고요한 눈으로 내 눈을 바라봤다. 오후 내내, 엄마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고 말하는 아이 얼굴이, 한 순간 그냥 내 얼굴 같았다. 갑자기, 그 어린 어느 날에 엄마를 그렇게나 보고 싶어했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듯했다. 아이가 눈앞에 있는데도, 아이가, 너무도 그리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래. 나도 니 생각을 하루종일 멈출 수가 없어. 그렇게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아이가 말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나는 아이에게 "너는 엄마의 뭐라고?" 물으면 "보물"이라고 말하도록 연습시켰다. 하루에도 몇 번은 "너는 엄마의 뭐라고?" 묻고 "보물"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때마다 아이가 보물로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보물이 되었다. 쟤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서로의 생각을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존재는, 쟤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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