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서로에게 필요없는 말
둘째 아이를 낳고 8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했던 나는, 무엇엔가 좀 씌어 있는 상태였다. 쉬는 동안 팀에서는 빵빵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있었고, 하필이면 내가 기획했던 책을 다른 편집자가 편집해 연거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놓은 터라 굳이 내가 복귀하지 않더라도 누구 하나 아쉬워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복귀해서 내가 얼마나 팀에 필요한 존재인지, 몇 달 좀 쉬었다고 해서 내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내겐 일에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세상에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둘째도 엄마를 필요로 했다. 복귀와 동시에, 나는 후회했다. 둘째를 낳는 것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양가 누구의 도움 없이 하루를 십 분 아니, 오 분 단위로 쪼개가며 숨가프게 해치우던 나날이었다. 아침이면 첫째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 밀어넣듯 맡겨놓고 쏜살같이 회사로 출근해 퇴근시간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미친듯이 일을 하다가, 퇴근시간 5분 전부터 폭발할 듯한 긴장감 속에서 일을 쳐내버리고 미친듯이 어린이집으로 내달려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아이를 찾아, 봄가을이면 놀이터로 여름이면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로 겨울이면 붕어빵 사들고 다른 모든 아이들이 누리는 마땅한 일상을 누리게 해주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 아이에게 반찬 하나라도 해먹이고 함께 책을 읽고 자장가를 불러주다가 아이가 잠들어버리고 나면, 그때부터 밀린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밤 열 시에서 새벽 두 시. 당시 나는 하루 네 시간가량을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일했다. 애 키우느라 일이 엉망이라는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둘째를 낳았고, 복귀를 하고 나자, 그 보석같이 예쁘던 아이가, 더는 예뻐 보이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산후우울증이었다.
둘째 아이는 첫째처럼 금세 잠에 곯아떨어지지도 않았다. 일을 해야 하는데, 애는 계속 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열한 시, 열두 시까지 애를 안고 얼르는 일이 잦았고 결국엔 화가 폭발해 부득부득 이를 갈며 아이를 노려보는 날도 많았다. 일 년이면 일 년을 야근을 하는 남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 남편은 열두 시 즈음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면 대체로 화가 잔뜩 나 있는 나를 보며 인사해야 했다. 어떤 때는 내 표정 때문에 아무말도 건네지 못하고 조용히 둘째를 받아 안고 양말도 벗지 못한 채로 대신 애를 재우기도 했다.
나는 계속 화가 났다. 아침이 되면 좀 더 집에 있겠다며 떼를 쓰는 둘째를 우악스럽게 들쳐안고 억지로 신발을 신겼고, 어떤 때는 너도 좀 아파보라고 팔을 있는 힘껏 쥐어 당기기도 했다. 어떻게 겨우 참고 밝은 얼굴로 어르고 달래 나오는 날이 반, 이를 악 물고 화를 삭이며 아이만 알 수 있는 분노의 손짓으로 애를 끌고 나오는 날이 반이었다. 첫째 아이는 그 옆에서 살살 내 눈치를 봤다.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그러기를 일 년을 했을 즈음이었다.
첫째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는 엄마 하나가 우리 둘째가 말이 좀 더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뭘 하나 조르기 시작하면 서 있던 길바닥에 그대로 누워 두 시간씩 울기도 하던 즈음이었다. 첫째가 원체 빠르고 유순해서, 둘째는 더 유별나게 느껴지나 보다 생각하는 정도였지 아이가 딱히 느리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유심히 살펴보니, 우리 둘째는 유독 표정이 없었다. 사람을 보며 웃는 일도 거의 없고, 누가 말을 해도 주의 깊게 듣는 제스처가 없었다. 혼자서 잡고 있는 것에 골똘할 뿐, 누가 불러도 쳐다보지를 않았다.
인터넷에 이렇게 저렇게 검색을 해보던 나와 남편은 덜컥 겁이 났다. 자폐스펙트럼 같았다.
다행히도 바로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막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린 참에 저기서 놀고 있던 둘째가 내게 다가와 갑자기 덜컥 나를 껴안았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자폐스텍스럼인 아이는 이런 무의미한 행동은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몇 개 아이 행동을 조금 더 지켜본 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놀이치료나 언어치료는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해주었다.
처음 상담센터에 간 날, 나는 아이가 응접실에서 나를 대기하고 있는 사이에 마주한 상담사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날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나와 아이의 관계를 곱씹어보니,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를 보며 분노하고 슬퍼하며 후회하는 날들을 보내는 동안, 아이 역시 내 그 분노와 슬픔과 후회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의 세계는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했을까. 나는 그제서야, 아이의 슬픔이 내 슬픔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슬펐던 것이, 슬펐다. 아이의 외로움이 비로소 나의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더없이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에 더는 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이가 잘 때,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부비고 그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다가 함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잠들어버리자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랬더니 새벽에 번쩍번쩍 눈이 떠졌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다가 애가 일어나면 바로 내팽개쳤다. 으스러질까 봐 조심해야 할 정도로 꼭 끌어안고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도 애 둘을 먹이고 씻기고 입혀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둘을 등원시키고 쏜살같이 회사로 달려갔고 미친듯이 일을 쳐내 퇴근시간을 맞으면, 또 그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는 마음으로 폭주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거기에 더해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을 이용해 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아이를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이 기뻐서 울고, 어떤 날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미움의 찌꺼기를 발견하고 놀라서 울었다.
하루는 하위 1%라는 언어검사 결과를 듣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붉은 신호등을 보며 울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엉엉 엉엉엉엉 엉엉엉엉, 엉엉엉엉? 엉엉엉엉 엉엉엉엉... 엉엉엉... 하고 울었다. 남편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 말을 듣고는, 여보 잘하고 있어요. 앞으로 우리 둘째 금세 말하게 될 거예요. 여보가 너무 고생해줘서,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나도 말했다. 으엉엉엉. 으엉엉엉. 엉엉어어어어엉....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상담센터에 간 날이었다. 얼른 아이를 도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들어가 오후 업무를 봐야 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차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아이가 말갛게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내게 '엄마,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순간 어딘가 첨벙 하고 빠져드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응?' 하고 되물었더니 아이가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엄마, 미안해요...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잠들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우리 귀염둥이는 엄마의 소중한 보석이야' 이야기해줬다. '엄마의 소중한 보석, 뭘 갖다줘도 안 바꾸지. 너무 소중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어. 우리 귀염둥이는 엄마의 가장 귀한 보석이야.' 잠이 들 때까지 속삭여줬다. 이제는 산만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져서, 수시로 다가와서 '사랑해요, 하트, 하트' 외치는 통에, 우리가 어떤 걱정을 했던 적이 있던가 가물가물해진 지 오래이다. 여전히 아이가 하는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무언가 신나고 행복한 생각에 잔뜩 휩싸여서
그게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라는 것만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아이가 하는 말모양을 못되게 따라하는 친구들도 생긴 탓에, 전보다 언어치료에 더 힘쓰고 있는 상황이지만, 걱정이나 염려 같은 것은 더 들지가 않고 그저 뭐가 되든, 아마 신나고 즐거운 것을 하게 되겠거니 믿고 도와주려는 마음만 잔뜩 먹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더는 서로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단 몇 달, 그저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었을 뿐,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주욱,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 마음만큼은 서로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러자면 너무 방심할 일도 아니다. 아이는 아무리 공을 들여 키워도 다 크고 나면 엄마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어 소리지르며 반항하는 존재이다. 그럴 때 꼼짝 못하게 하려면, 언제 떠올려도 곧바로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든든한 소리와 냄새와 제스처를 각인시켜두어야 한다.
피곤하지만, 그러라고 신은 엄마를 만들었다. 그런 거 하라고, 그래서 아이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라고.
널 한 번 눈에 넣어볼까 봐. 아픈가, 안 아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