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형광팬 캠프
그 보안요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고선 어디론가 무전을 날렸다.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마
음을 졸였지만, 겉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 길 건너편 화단에라도
올라가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몇 차례 무전을 주
고받은 보안 요원은 내게 정문 가장 가까운 자리를 내어주었고,
텐트를 치는 사이 몇 명의 보안 요원들이 몰려와 나를 구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쑥스러워서 텐트를 치는 손이 무뎌
졌다. 보다 못한 요원들이 텐트를 같이 쳐주면서, 방송국 앞에 텐
트 치고 밤새는 건 아이돌 팬들 말고는 처음 본다며 엄지손가락
을 세워주었다. 다들 얼마나 친절하신지 텐트를 다 치고 나서도
혹시나 투표장을 다른 곳에 설치하게 되면 바로 알려줄 테니 전
국 1등을 놓치지 말라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두 번째 투표자가 왔을 때는 새벽 4시 무렵이었다. 이미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방송국 앞에 텐트 친 극성 무도 팬의 인증 사
진이 올라간 시점이었다. 본인도 그걸 보고 얼른 달려왔다고 했
다. 본인보다 더한 팬이 있을 줄 몰랐다며 분명히 무도 멤버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인터뷰도 하게 될 테니 정리해 놓으라고
도 했다. 아, 내게 살아생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무한도전>에
나오고 있는 내 모습이 선했다.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감과
패배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행복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
이 두근거렸고 동이 트고 나자 내 뒤에는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전국에서 가장 먼저 투표를 했다. 수많은 팬의 부러
운 눈길을 받으며 투표장에 입장하는 것부터 촬영했고, 인터뷰도
했다. 텐트까지 동원된 투표의 열기는 여러 기사에 보도되었고
김태호 PD가 직접 나의 인증샷을 리트윗해 주기도 했다. 결국 유
재석은 큰 표 차이로 리더에 당선되었다.
본방송을 보면서 유재석의 승리에 나도 한몫했다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가족들 앞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 방송에서는 촬영한 영
상, 인터뷰가 모두 편집되었다. 단 1초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투표 당일에도 <무한도전> 멤버들은 만날 수 없었다. 뭔가
추억을 만들다 만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아쉽지만 별 수 없
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결과가 시원찮은 게 어디 한두 번
이 던가.
인생에 마법 같은 순간은 생각처럼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