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미 Oct 25. 2022

너를 처음 알게 된 날.

엄마가 되는 길- 고마운 너를 꼭 지킬게.

 2008년이면 벌써 십 년도 훌쩍 넘는 과거이지만 그 새벽의 설렘과 감동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한번 자면 업어가도 모르는 나지만 그날따라 속이 메스꺼워 새벽에 일어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이미 수십 번 해보았기에 별 감흥 없이 숙련된 자세로 검사에 임했다. 테스트기의 첫 번째 줄이 선명하게 붉어지고 다음은 두 번째 줄이었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라고 옅게 한숨을 쉬며 쓰레기통으로 버리려던 찰나 마지막으로 쳐다본 테스트기의 오른쪽 창에서 옅게나마 두 번째 줄이 진해지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는데 임신을 알리는 그 빨간 선이 점점 더 진해지기 시작했다. 비좁은 화장실에서 한 손에는 테스트기를 들고 마네킹처럼 미동도 없이 한참을 서있었다. 살면서 받아보게 되는 빨간 줄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갈망했고 또 가장 기쁘게 맞이하는 빨간 줄이 아니었을까.




 임신이다! 그렇게 나는 첫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엄마 나예요! 내가 드디어 엄마한테 찾아왔어요. 그동안 기다리느라 고생 많았지요?'라고 아이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당시가 새벽 네시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잠자리에 누웠는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의 감정은 지금도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정말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엄청난 기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에 대한 신기함, 이유 없이 찾아오는 약간의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경이로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첫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어 내가 공식적으로 엄마가 된 날은 2008년 9월 7일이다. 이때부터 병원을 가면 간호사나 의사가 나를 'Mum(호주에서는 o대신 u를 쓴다)이라고 불렀다. 그날의 그 느낌은 이후 세 번(사실 네 번)의 임신 때는 경험할 수 없었다. 처음이라는 특별함은 이렇듯 강렬하다.




 당시 미니홈피에 적어두었던 일기를 읽어보니 마지막에 엄마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적어놓았었다. 무차별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감정들을 정리하고 나니 결국 감사함이었나 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아도 정말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첫째는 나에게 엄마라는 영광을 안겨준 인생에서 은인 같은 고마운 존재이다. 이 부분은 아마 평생 감사하지 않을까 싶다. 내 품에 안겨진 생명체를 지켜내느라 나도 모르게 필사적이었고 한참 부족한 엄마를 오롯이 사랑하고 믿어주며 아이도 긴 시간을 나와 함께해주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큰애는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 같다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큰애를 임신했을 당시는 유학생 신분에 영주권을 따기 위해 어학공부며 일까지 했던 내 인생에서 손꼽힐 만큼 힘든 시기였다. 그 피 터지는 전투에 나와 함께해줬던 것이다.




 험난한 세상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와 준 행운 같은 아이를 위해 생전 해보지도 않던 노력들을 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며 약도 잘 챙겨 먹기로 나 자신과 다짐했다. 물론 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지금보다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노력이 가상하다는 말이 있듯 당시 스물여섯 어린 엄마였던 내가 안쓰럽고 대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몸에서 보내는 모든 민감한 변화에 나 보다는 아이의 안위를 걱정했고 아랫배가 당기거나 피가 비칠 때마다 나를 질책했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뱃속 아이는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모르게 한 생명에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를 그저 감사하게 생각하고 책임을 다해 지켜내려고 했던 나는 그렇게 서서히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나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새로운 생명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늘 했던 것 같다. 네 명의 인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켜내고 함께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지치고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택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원동력이 되어 나 또한 많은 부분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를 가지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었다. 2020년 4월 4일은 넷째의 존재를 확인한 날. 설렘과 부담, 그리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까지 느꼈던 그때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아이를 통해 나는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싸이월드가 기억해준 그날!





- 엄마성장보고서: 아이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날은 어땠나요?


이전 04화 꿈꾸는 엄마의 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