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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Oct 26. 2022

소중함과의 이별.

엄마가되는길- 당연함에 감사하는법을 배우다.

 나에게는 네명의 아이가 있지만 사실 나는 다섯번의 임신을 했었다. 그중 네번째 임신에서 아이를 떠나보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늘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넷째를 낳고싶다고 결심하자마자 바로 아이가 찾아왔었고 아무래도 경산모(두번이상 출산한 여성)이다보니 큰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특히 이전에 세 아이를 건강하게 임신하고 출산했기때문에 당연히 넷째도 건강하게 맞이할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역시 당연한것이란 없었다.




 처음 임신한 사실을 알게된 그 당시 남편은 한국에 출장을 가 있었다. 그래서 떨어져있는 시간동안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자신이 옆에서 못 챙겨주는걸 엄청 미안해했다. 미안함과는 별개로 아기소식에 정말 많이 행복해 하기도 했다. 남편과 나 뿐만아니라 가족과 지인들도 내일처럼 함께 기뻐해주었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기 초음파를 보러 검사실을 찾았었다. 남편이 없는동안 혼자 했던 첫 초음파에서 심장소리가 너무 작게 들린다고 다시 초음파를 해보라고 의뢰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쁜마음으로 찾은 검사실에서 아이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되었다. 순간 들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믿을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싶지가 않았다. 초음파를 해주셨던 선생님은 아이가 잘못되었음을 확신했지만

우리부부는 다른 검사실을 찾기로 했다. 한국처럼 바로 초음파를 찍을 수 없다보니 다시 주치의를 만나서 검사의뢰서를 받고 또 며칠을 기다려 겨우 다시 검사를 받았다. 역시 아이의 심장은 멈춰있었고 날짜상으로는 10주의 아이였지만 7주까지만 자란 채로 뱃속에서 생을 마감해있었다. 새해에 일출을 보고나서 임신이되어 태명도 '일출이'라고 지어주었다. '태명을 잘못 지어서 찬란하게 엄마를 찾아왔다가 져버린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받았나?' 내탓같이 느껴지는 상황속에서 나는 눈물만 흘렸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결국 남편도 같이 울었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과의 이별을 경험한것이다.




 호주는 의료시스템이 복잡하고 느리다. 주치의의 소견서가 없이는 검사도 전문의진료도 받을 수가 없다. 슬픈현실도 견디기 어려운데 다시 예약해서 며칠을 기다린 뒤 주치의를 만나 심장이 뛰지않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논의해야했다. 주치의는 약물로 사산된 아이를 자연배출하는 방법과 수술하는 방법이 있다고 기계적으로 말해주었다. 나는 그냥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아이의 흔적을 내눈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아 병원에 전화를 했고 2주 뒤로 수술날짜를 받았다. 당시 우리집에 와계시던 친정엄마는 바로 수술이 되지않는 호주의 상황에 분노하셨고 당장 한국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내 혼자 몸을위해 아이셋을 두고 한국으로 갈 수 없었기에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던 2주의 기다림을 시작했다.




 뱃속 아이의 죽음을 알고서도 아이를 계속 품고있을 수 밖에 없었던 나는 신기하게 입덧도 계속했다. 그 사실이 더 슬펐다. 주변에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했지만 자꾸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아이를 잃은것만 같았다. 건강하다고 자만하지말고 몸을 조심할걸. 아이가 안정기에 접어들때까지 일을 좀 줄일걸.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외면할걸. 상실감과 무기력감에 우울증도 살짝 찾아왔던것같다. 남편과 가족의 보살핌속에 가만히 숨만쉬어도 2주는 흘러갔고 결국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별의 흔적을 지우는것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예전처럼 돌아오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곁에서 나를 지켜주던 남편과 엄마, 평소처럼 해맑게 내 옆에 있어준 아이들, 그리고 지인들의 진심어린 위로 덕분이었다. 이후 내 주변의 인연과 만남, 이별에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특히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이 당연하게 와준것이 아니라 운명처럼 나에게 와주어 행운처럼 매일 함께하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이 아이들의 엄마인것이 감사하고 아이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남편도 남편을 낳아주신 부모님도, 가족도 그리고 나의 지인들도 다 너무 소중해졌다. 어찌보면 짧에나마 나의 엄마인생에 찾아와주었던 일출이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소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내 옆의 소중한 생명들에게 감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출아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엄마성장보고: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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