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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Oct 26. 2022

변한다는 건 쉽지 않지만.

엄마가 되는 길- 그래도 너를 위해 버텨볼게.

 임신은 내 삶에서 커다란 변화였다.


 먼저 몸이 바뀌었다. 가뜩이나 잠이 많은 사람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졸음이 몰려왔다. 거기에 테스트기의 두줄을 확인하고서는 신기하게도 바로 입덧이 찾아왔었다. 입덧을 할 때는 정말 그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차원이 다른 상황에 직면했었다. 숙취 다음날 속이 좋지 않아 계속 토할 것 같고 메스꺼운 느낌을 하루 종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나마도 먹을 때만 괜찮아졌었는데 음식을 씹고 삼키는 순간만 괜찮을 뿐 이후에는 계속 속이 더부룩하고 메슥거렸다. 이 상태가 몇 달간 지속되다 보니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평소에 잘 먹던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그 상태로 식구들을 위해 요리까지 할 때면 정말 왜 아이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하나 싶었다. 막내 때 입덧을 가장 심하게 했었는데 입덧의 고통을 알면서도 또 임신을 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네 번의 임신 모두 12주까지만 입덧을 했었다. 입덧 때문에 임신기간 내내 야위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이상하게도 12주까지만 입덧을 하고 이후에는 엄청난 식욕이 몰아쳐왔었다. 입덧이 그랬듯 먹덧 또한 네 번의 임신 모두 공평하게 함께했다. 제일 많이 살이 쪘던 둘째 때는 막달에 28킬로그램까지 체중이 불어났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먹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어찌 보면 임신을 핑계로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었기에 식욕 제어판이 고장이 났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책임도 내 몫이었다. 몸무게의 숫자가 80을 향해 달려갈 때쯤엔 몸집 자체가 커지니 행동은 굼떠지고 똑바로 눕기조차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속절없이 커져가는 몸집에 슬며시 식욕 대신 자존감만 줄어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가 눈에 보이게 커지게 되자 태동이 잦아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밤에 더 활발했다. 눌린 방광 때문에 밤에 화장실도 자주 가다 보니 숙면을 취하는 게 힘들어졌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태에서 첫아이 임신 때는 학업, 일, 공부를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임신 막달에는 뱃속에서 커진 아이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고 위가 눌려 먹는 것도 제대로 소화를 못했다. 뿐만 아니라 태아 무게 때문에 골반과 치골이 눌려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위아래로 진퇴양난이었다. 밥을 먹고 앉아서 편하게 쉬고 똑바로 누워 잠을 자는 일상이 서서히 희망사항이 되어갔다. 임신이라는 축복을 선물 받고 당연한 것들을 잃었다.




 몸의 변화 못지않게 마음도 크게 동요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늘고 불안한 감정이 들 때가 많았다. 마냥 신기하고 설레다가도 왜 여자만 이런 변화를 겪어야 하는지 의미 없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 파도는커녕 태풍처럼 몰아쳤다가 갑자기 사그라들곤 했다. 이런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의문도 들고 일도 살림도 육아도 잘 해낼 수 있을지 미리부터 걱정만 앞섰다.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를 임신을 했을 때는 이미 낳아놓은 아이들도 제대로 못 키우는데 또다시 임신을 한 내가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감정의 변화에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몸의 변화보다 마음의 변화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이가 늘 함께였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 뱃속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오는 아이의 존재가 나를 붙잡았다. 처음 심장소리를 듣던 날, 초음파로 모습을 확인한 날, 태동을 느끼던 날 아이는 나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이의 소리 없는 응원을 느끼며 모든 변화의 이유가 내 뱃속의 아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그나마 버틸 힘이 생겨났다. 이 모든 상황이 아이를 제대로 지켜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되뇌었다. 그러다 보니 입덧이 없어지거나 몸무게가 줄거나 태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오히려 아이를 먼저 걱정했다. 다행히 나의 변화 속에서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사실 일이나 인간관계의 변화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는 이렇게 빨리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잘못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에 집중하고는 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원인과 상황에 대해 원망하고 결국 포기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바뀐 나를 마주하며 인생에서 찾아오는 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연습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아이를 원망하고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국 지나가야 할 과정이라면 최대한 행복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 한걸음 성장하게 된 부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아이를 키울 때도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다양한 변수들에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원더 윅스가 와서 심하게 보챌 때, 자의식이 강해져 고집을 피울 때, 사춘기가 되어 반항을 시작할 때처럼 당황스럽고 버거운 상황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수월해졌다. 물론 매번 그렇게 자애로운 엄마로 대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아이에게 짜증이나 화를 냈더라도 한숨 돌리고 다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아이들도 나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삶의 자세를 엄마가 되어 가지게 되었다. 변화를 견뎌낸 나를 다독여주고 싶은 순간이다.

 



둘째가 젤리 곰일 때 보내 준 응원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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