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불안한 엄마의 탄생] 남들 하는 건 또 해보고 싶었다
임신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원체 술을 못 마시던 터라 입덧이 가져온 울렁거림은 너무도 생경했고 시도 때도 없이 졸리며 늘 체력이 바닥이었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임신기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영주권을 따기 위해 학생비자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며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은 미용실에서 일했다. 영어시험도 준비해야 했기에 짬을 내어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다. 영주권만 받으면 적어도 아이는 나처럼 힘든 인생을 살 지 않을 것만 같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니, 어찌 보면 뱃속의 아이가 힘든 엄마의 삶을 잘 버텨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늘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혹여 잘못될까 하는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뭘 몰라서 그 힘든 시간을 오히려 잘 버틴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렇게 살라고 하면 그때만큼 잘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다. 호주땅에서 스물다섯 나이에 아이를 가지다 보니 주변에 임신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아이폰도 없던 시절,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임신출산육아 대 백과사전'과 네이버 맘카페가 전부였다. 내 몸이 이렇게 변하는 건 아기가 잘 자란다는 증거이려니 하며 남들과 비슷한 수순의 신체변화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렇게 나름 행복하게 지내던 임신기간이 중반을 넘어서던 무렵이었을 거다.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태교여행'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도 꽂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임신 중 하던 버킷리스트들은 잘 넘어갔는데 유독 태교여행이라는 키워드는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 학교에 일에 영어공부까지 할 일이 태산인데 가당치도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너무도 가고 싶었다. 그럴 만도 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다른 나라에 삶의 터전까지 잡은 나였으니 말이다. 임신 전이 아니면 당분간 여행을 가기 어렵다는 이유가 그렇게나 와닿았다.
결국 나도 태교여행을 갔다. 없는 돈에 없는 시간을 쪼개 시드니에서 한 시간 떨어진 뉴캐슬이라는 곳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호텔도 아닌 백패커의 2인실에서 잠을 자고 좋은 식당에 갈 돈이 없어 공원에서 바비큐를 해 먹었다. 입장료가 없는 국립공원과 무료시설을 돌아다니고 저렴한 페리를 타고 경치를 즐겼다. 솔직히 비참했다. 안 가느니만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뉴캐슬이라고, 태교여행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법한 그런 사진들만 남았다. 비행기를 타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 가서 푹 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즐기는 남들의 태교여행과 너무도 달랐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남들 다 하는 거 해보고 싶고 그러다가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 오히려 몰랐다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을 괜스레 욕심냈다가 마음에 상처만 입게 되었다.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거다. 부모님께 학비랑 용돈까지 받아가며 유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도 부럽거나 내 삶이 비참해본적은 없었다. 그런데 내 분신과도 같은 아이에게만큼은 뭐든 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때부터 남들이 하는 것들은, 특히 아이에게 해주는 것들은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한것이니까. 비극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