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흐름이라는 물살에 몸을 맡겨야 할 때도 있다.

by 윤스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마다의 흐름을 가지고 움직인다. 사람과의 관계든, 한 시기의 분위기든, 때로는 이미 정해진 물길처럼 흘러가려는 힘이 있다. 그 흐름을 억지로 바꾸려 할 때 오히려 더 큰 어긋남이 생기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도 흐름은 분명히 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또렷해도, 여러 사람의 마음과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흐름이 따로 존재하는 순간이 있다. 그 흐름을 거스르며 힘을 주면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마음에 작은 흉터가 남는다.

그때의 감정은 서운함보다는,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가깝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길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물길을 흘러가게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돌아보면 삶에는 흘려보냈어도 괜찮았던 일들이 참 많다. 그 순간엔 마음을 기울일 문제인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붙들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흘러가도록 두었더라면 상처도 덜했고, 마음의 자리를 덜 소모했을 작은 장면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흐름에 맡기라는 뜻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고, 그런 때만큼은 흐르는 방향보다 자기 안의 울림이 더 분명해진다.

하지만 일상의 많은 부분은 그렇게 엄숙한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지나갈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 일들은 흐름을 끊지 않고 자연히 흘러가게 둘 때 더 수월하게 정리되곤 한다. 삶은 모든 순간을 붙잡고 서 있어야 하는 길이 아니다. 붙들어야 할 때와 놓아도 괜찮은 때가 확실히 다르고,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감각이 생기면 사람은 조금 덜 상처받으며 세상이라는 터널을 지나갈 수 있다. 흐름을 읽는다는 건 결국 그런 마음에 가깝다.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지나가게 둘 것인지 자연스럽게 알아차리는 태도, 그리고 그 태도가 삶의 흐름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순간들이다. 애써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는 흐름이 알려주는 방향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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