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신들의 목욕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by 박신영

일본의 수많은 신을 의미하는 ‘야오요로즈노카미(八百万神)’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에는 다양하고도 수많은 신들이 있다. 지브리스튜디오에서 2001년 발표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는데, 신들의 목욕탕이라는 설정 그 자체로 일본 문화의 한 특징을 잘 그리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내러티브와 일본 신화의 ‘미소기(禊)’ 전승을 통해 ‘목욕하는 신’에 대해 읽어보자.



목욕하는 신 ‘오쿠사레가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치히로네 가족이 이사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버려진 테마파크처럼 생긴 신들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신들이 먹을 음식을 제멋대로 먹어버린 치히로의 부모는 돼지로 변하고, 홀로 남겨진 치히로는 살아남기 위해 신들의 온천인 유야(油屋)에서 일하게 된다. 치히로는 살아남기 위해 유야를 관장하는 유바바와 노동 계약을 맺는데, 이 계약으로 인해 치히로라는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 된다. 유야의 종업원 센으로서 처음으로 담당하게 된 손님이 바로 ‘오쿠사레가미’이다. 영화 속에서는 ‘오쿠사레가미’ ‘쿠사레가미’ 등으로 표현이 되는데, 일본어에서 ‘쿠사레’라는 표현은 ‘썩다’라는 의미이다. 오쿠사레가미는 그 이름 그대로 악취와 진흙투성이의 모습이었다. 번역하자면 ‘오물신’ 정도가 되겠다. 그 누구도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는, 씻어내야 할 더러움이 가득한 상태로 등장한다. 욕장으로 들어선 오쿠사레가미가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탕에 들어가고, 약초 물을 계속해서 쏟아붓지만, 진흙 같은 오물이 넘쳐날 뿐 좀처럼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다 센이 가시처럼 삐죽 튀어나온 자전거 핸들을 발견해 잡아당기자 대량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쓰레기를 모두 쏟아낸 오쿠사레가미는 마치 하회탈 같은 노인의 얼굴로 변하는데 이를 본 유바바는 ‘이름 있는 강의 주인’임을 알아본다. 노인의 얼굴을 한 용의 모습으로 변모한 오쿠사레가미는 센에게 귀중한 ‘쓴 경단’을 남겨준다. 그리고 진흙이 씻겨내려 간 자리에는 사금(砂金)이 남아있다. 쓰레기라는 ‘게가레’ 즉 부정한 것을 씻어낸 결과 오쿠사레가미는 이름 있는 강의 주인으로 변모하고, 결과적으로 쓴 경단과 사금 같은 귀중한 것이 남은 것이다.



오쿠사레가미의 ‘미소기’와 이자나기의 ‘미소기’


《고사기》에서 미소기와 관련된 전승 중에서도 특히 이자나기의 미소기는 그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 과정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오쿠사레가미 즉 오물신이 목욕하는 과정과 빗대어 살펴보자.

오쿠사레가미는 가장 먼저 더러운 게가레로 뒤덮인 상태로 등장하고, 다음으로는 게가레를 씻어낸 후 그 자리에는 귀중한 것이 남으며, 마지막으로 오쿠사레가미 자신은 목욕을 통해 이름있는 강의 주인이라는 귀중한 존재로 변모한다.


오쿠사레가미의 입욕 과정은 《고사기》 신화에서 그리는 이자나기의 미소기 전승에서 보이는 흐름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자나기의 미소기 전승을 통해, 미소기에 앞서 게가레가 무엇인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지, 게가레로부터 생성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이후의 회복 과정, 그리고 마지막 결과물이라는 네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1) ‘게가레’에 대한 인지

먼저 《고사기》에서는 ‘나는 매우 더러운 나라에 다녀왔다’라는 이자나기의 말을 통해 이자나기는 이미 게가레를 씻어내야 한다고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오쿠사레가미의 경우는 어떨까. 오쿠사레가미가 갑자기 쏟아진 물에 빠진 센을 손으로 건져 올리는 듯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오쿠사레가미가 센을 구해주는 듯 보이지만, 센을 건져 올린 이후의 장면에서 오쿠사레가미의 몸쪽으로 더 가까이 데려가는 듯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림콘티에 미야자키 감독은 ‘온천물의 벽을 마치 베일을 걷어 올리듯’ 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을 기록해두었다. 이것은 오쿠사레가미의 몸쪽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장면으로, 오쿠사레가미가 센을 건져 올린 것은 단순히 센을 구하고자 한 행동이 아니라, 오쿠사레가미 자신이 ‘게가레’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센이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끈 것이라 할 수 있다.


(2) ‘게가레’에서 생성되는 것

《고사기》에서는 미소기 과정에서 다양한 신들이 생성되는데, 총 4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황천국 방문으로 인한 게가레에 의해 생겨난 신들이 생성되고, 다음으로 그 화를 바로잡기 위해 생겨난 신들이 생성된다. 다음으로는 와타쓰미 3신・쓰쓰노오 3신, 마지막으로 삼귀자가 생성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게가레에 의해 생성되는 것은 야소마가쓰히노카미와 오마가쓰히노카미라는 두 신이다. 이에 대비되는 오쿠사레가미의 게가레로 인한 생성물은 진흙과 악취라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음식을 썩게 할 정도의 악취와 물을 쏟아부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흘러내리는 진흙은 그 자체로 ‘게가레’인 것이다.


(3) 회복 과정

《고사기》에서는 게가레로 인해 생성된 신들 다음으로 게가레의 화를 고치기 위해 생성된 신들인 가무나오비노카미, 오나오비노카미, 이즈노메가 등장한다. 이 과정을 게가레로부터의 회복이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쓰레기더미가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대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고가의 약재가 듬뿍 들어간 물을 쏟아부어도 좀처럼 깨끗해지지 않던 게가레는 센이 잡아당긴 자전거 핸들을 시작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쏟아진다. 쓰레기를 모두 쏟아내자 부풀어 올라 있던 오쿠사레가미의 몸이 바람 빠진 듯 줄어든다. 쓰레기가 쏟아지는 이 과정이 오쿠사레가미가 강의 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과정이다.


(4) 미소기의 결과

《고사기》에서 이자나기가 행한 미소기의 결과물이라 하면, 이후 전승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 와타쓰미 3신・쓰쓰노오 3신, 그리고 삼귀자를 들 수 있다. 특히 삼귀자는 일본 신화에서 가장 유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신들로 향후 전승 전개에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회복 과정을 겪은 후, 진흙으로 넘치던 바닥에는 사금이 남고, 센의 손에는 쓴 경단이 쥐어진다. 쓴 경단은 후에 거대한 모습으로 변해 폭주하는 가오나시를 원래대로 되돌리기도 하고, 죽음에 직면한 하쿠를 살리는 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재료로 등장한다. 또 미소기를 행한 당사자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다. 《고사기》에서는 미소기 전승 이전에는 이자나기노카미(伊耶那伎神) 혹은 이자나기노미코토(伊耶那伎命)로 표기되던 것이 미소기 전승부터는 이자나기노오미카미(伊耶那伎大御神)로 격상된 것을 알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모두가 피하던 오쿠사레가미가 목욕을 통해 ‘이름 있는 강의 신’으로 변모하여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간다.


이처럼 게가레에 대한 인지, 게가레에서 생성되는 것, 회복 과정과 미소기의 결과로 나타나는 구조가 《고사기》에 등장하는 이자나기의 미소기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오쿠사레가미가 목욕재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유사하게 나타난다.



오쿠사레가미의 ‘게가레’가 의미하는 것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름 있는 강의 신이 오쿠사레가미 즉 오물신의 모습이 된 것은 몸속에 가득 찬 쓰레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소기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 쓰레기더미는 오쿠사레가미가 씻어내야 할 ‘게가레’라고 할 수 있다. 오쿠사레가미는 자신의 게가레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욕탕 물에 빠진 센을 건져 올려 자전거 핸들 쪽으로 인도한다. 쓰레기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사물, 즉 죽음을 맞이한 사물의 잔해다. ‘강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심코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은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좀처럼 해결 혹은 해명이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표현된 쓰레기는 죽음을 맞이한 사물의 잔해임과 동시에 해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현상이 섞인 현대의 ‘게가레’로써 그려지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오쿠사레가미 에피소드에 미소기 전승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작품 속에 그려지는 오쿠사레가미의 에피소드는 ‘게가레’를 씻어내 정화하는 ‘미소기’라는 행위가 현대 일본 문화 저변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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