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2020)
연재만화가 원작인 만화책 『귀멸의 칼날』은 2021년 2월 15일 시점에 누적 발행 부수 1억 5천만 부를 돌파하며, 일본의 ‘국민 만화’라 불리기 시작했다. 크게 흥행한 『귀멸의 칼날』은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으며, 2020년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劇場版「鬼滅の刃」無限列車編)>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또 일본에서 영화 흥행 여부를 따지는 지표인 흥행수입 순위에서는 2001년 개봉 이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의 316억 8천만 엔이라는 기록을 단숨에 넘어선 총 흥행수입 404억 3천만 엔으로 1위에 올라섰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은 만화책 『귀멸의 칼날』은 2019년 9월 30일에 정식 한국어판이 발행되기 시작해, 2021년 4월 21일에 발행된 23권을 마지막으로 완결됐다. 일본에서 ‘국민 만화’라 불릴 정도로 크게 흥행한 ‘귀멸의 칼날’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021년 한국에서 개봉하자, 여전히 COVID19 팬데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21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로 치부하기에는 ‘귀멸의 칼날’로 인해 점화된 우경화 논란은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일본의 우경화 논란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욱일기 논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귀멸의 칼날’의 경우 주인공의 귀고리 문양이 욱일기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귀고리라는 특성상 주인공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주요 장면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히노카미카구라(ヒノカミ神楽)’나 ‘해의 호흡(日の呼吸)’ 등 태양신 즉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작품의 주요 키워드로 관통하고 있다. 일본의 신화 특히 아마테라스는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천황을 신격화하고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통치이념으로 활용된 전적이 있는 만큼, 아마테라스를 연상시키는 모티프가 다수 등장하는 ‘귀멸의 칼날’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욱일기’ 역시 주요 키워드이다.
‘귀멸의 칼날’ 작품은 큰 인기와 함께 논란도 일었는데, 특히 주인공인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어판의 컬러판 표지에 단지로가 등장하는 것은 1권, 2권, 3권, 4권, 10권, 20권, 23권으로 총 7회에 걸쳐 단지로의 이미지를 컬러판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주인공 단지로의 귀고리에는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흑백으로 인쇄된 만화책 본문과 달리 컬러판 표지에는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을 붉은색으로 표현하고 있어 이 문양이 욱일 문양을 모티프로 한다는 점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귀에 화투 같은 장식을 달고 있는 혈귀 사냥꾼의 목을 가지고 와라. 알겠나.
(耳に花札のような飾りをつけた鬼狩りの頸を持ってこい。いいな。)
- 기부쓰지 무잔의 대사,『鬼滅の刃』2:第14話
만화책 본문에서는 악의 최정점인 기부쓰지 무잔(鬼舞辻無惨)이 주인공의 귀걸이에 대해 ‘화투’ 같은 장식이라고 언급한다. 화투 같은 장식은 다시 말하면 꽃무늬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가문마다 고유 문양을 상징으로 사용해 왔는데, 그중에는 꽃을 모티브로 한 문양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16장의 국화잎을 표현한 일본 천황가의 국화 문양이다. 천황가의 문양은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직선이 그어진 방사형이기는 하지만, 바깥쪽에서 둥글게 만나면서 꽃잎을 형상한다. 반면에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은 방사형으로 뻗어가기만 할 뿐 그것이 꽃잎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꽃이나 작물 등 식물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문양을 찾아봐도 방사형으로 뻗어나가기만 하는 모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듯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은 꽃무늬보다는 ‘욱일’ 문양이라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대사를 통해 귀고리 문양을 ‘화투’ 같은 장식이라 언급하는 것은 해당 작품 발표 후 예상되는 욱일기 논란을 의식한 장치이지 않을까.
한편, 2021년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에서는 주인공의 귀고리 문양에 변화가 나타났다. 2020년 10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극장판에서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은 여전히 ‘욱일’ 문양을 연상시키는 모습 그대로이다. 반면, 2021년 1월 한국에서 개봉할 당시 주인공 단지로의 귀고리 문양에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문양이 삭제됐다.
‘귀멸의 칼날’의 욱일 문양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만큼, 학계에서도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노윤선(2021)은 단지로가 잇고자 하는 정신은 교주로의 정신, 즉 교주로의 ‘불꽃(炎)의 정신’이고, 이것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욱일기’라는 장치에 함축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주인공의 귀고리에 드러나는 ‘욱일’ 문양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무라이 정신’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후 이듬해 한국에서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욱일’ 문양을 변형시켜, 해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햇살이 뻗어나가는 부분을 삭제했다. 이는 한국에서 만화책 『귀멸의 칼날』의 인기와 함께 벌어진 욱일기 논쟁, 우익 만화 논쟁을 의식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계속되는 여러 논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왜 ‘욱일기’를 고집하는가.
‘귀멸의 칼날’에는 태양신 즉 아마테라스와 관련된 요소가 곳곳에 보인다. 태양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해의 호흡’ 같은 설정부터 시작해, ‘히노카미카구라’라는 춤은 마치 아메노이와도에 숨은 아마테라스를 끌어내기 위해 아메노우즈메가 춤을 추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히노카미카구라는 주인공 단지로가 아버지로부터 귀고리와 함께 계승한 것이다. 해의 호흡을 창시한 쓰기쿠니 요리이치(継国縁壱)가 자신이 구한 단지로의 조상 가족들과 가까이 지내던 중, 그들 앞에서 히노카미카구라를 춘 것에서부터 단지로 가문에서 계승되기 시작했다.
『귀멸의 칼날』에서 히노카미카구라는 연초에 일몰부터 동틀 때까지 총 12개의 춤사위를 동틀 때까지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끝없이 반복하는 춤이라고 설명한다. 아마노이와야에 숨어버린 아마테라스가 다시 나올 때까지 계속된 아메노우즈메의 춤처럼, 동이 터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작중의 히노카미카구라이다.
히노카미카구라에서 ‘카구라(가구라, 神楽)’는 신에게 바치는 춤으로 아메노이와도 신화에서 아마테라스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메노우즈메가 춤을 춘 것이 그 기원으로 여겨지며, 헤이안(平安)시대에 이르러 그 양식이 완성됐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일본 신사의 제례 의식에서 ‘가구라’를 찾아볼 수 있다. 또 ‘히노카미’를 한자로 표기하면 ‘일신(日神)’ 즉 태양신을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말하는 ‘히노카미카구라’는 명칭 그 자체가 ‘태양신에게 바치는 춤’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단지로: 혹시 ‘해의 호흡’이란 히노카미카구라를 말하는 건가?
("日の呼吸"ってもしかしてヒノカミ神楽のことなのか?)
교주로 아버지: 그렇다. ‘해의 호흡’, 그건!! 시작의 호흡, 가장 처음 탄생한 호흡, 최강의 기술, 그리고 모든 호흡은 ‘해의 호흡’의 파생이지. 모든 호흡은 ‘해의 호흡’의 모방에 불과해. ‘해의 호흡’을 덮어놓고 흉내 낸 질 떨어진 호흡이야. 불도 물도 바람도 전부가!
(そうだ。"日の呼吸"は、あれは!!始まりの呼吸、一番始めに生まれた呼吸、最強の御技、そして全ての呼吸は"日の呼吸"の派生。全ての呼吸が"日の呼吸の後追いに過ぎない。"日の呼吸"の猿真似をし劣化した呼吸だ。火も水も風も全てが!!)
- 단지로와 교주로 아버지의 대화,『鬼滅の刃』8:第68話
위의 단지로와 교주로 아버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해의 호흡’이 즉 히노카미카구라이다. ‘모든 호흡은 ‘해의 호흡’의 덮어놓고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고 표현하며, 마치 다른 호흡을 낮잡아 보는 듯 표현하는 점은 모든 근원에는 ‘해’가 있다는 것으로 이는 세상의 중심에 태양신 즉 아마테라스가 있음을 의미한다.
해의 호흡의 형태는 숨을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후세에 가구라로 계승된 이유를 알 수 있어. 검을 휘두를 때 요리이치씨는 사람이 아니라 정령처럼 보였다.
(日の呼吸の型は息を忘れる程綺麗だった。あまりにも美しすぎた。後に神楽として受け継がれていった理由がわかる。剣を振るう時、縁壱さんは人ではなく精霊のように見えた。)
- 히노카미카구라 장면의 서술,『鬼滅の刃』22:第192話
히노카미카구라에 대한 단지로의 감상을 서술한 내용을 보면, 히노카미카구라는 인간이 단순히 신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신과의 일체화를 통해 그 힘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태양의 힘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에서 등장한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사람들을 잠들게 하여 원하는 꿈을 꾸게 만들어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하현의 혈귀 엔무(魘夢)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주인공 단지로와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무한열차에 탑승하고, 거기서 엔무와 대결을 펼쳐 잠들어 삼켜지기 직전의 사람들을 구해낸다. 하현의 혈귀인 엔무를 조종하던 상현의 혈귀 아카자(猗窩座)의 존재를 알아챈 교주로는 아카자와 혈투를 벌이는데,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는 상현의 혈귀를 상대로 인간인 교주로가 싸움을 벌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주로의 상처는 점점 심각해져 가고, 결국 교주로 숨을 거두는 것으로 극장판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교주로가 숨을 거두기 직전 교주로의 등 뒤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화책의 기술을 통해 해당 장면에서 아카자의 속마음을 한번 들어보자.
‘날이 밝는다!! 여기에는 태양이 비칠거야…!! 도망쳐야해. 도망쳐야해!!
(夜が明ける!! ここには陽光が差す…!! 逃げなければ、逃げなければ!!)’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아카자의 속마음『鬼滅の刃』8:第65話
교주로와의 싸움에서 내내 자신만만하던 상현의 혈귀 아카자는 해가 뜨는 것을 보자 당황해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한다. 교주로와 아카자의 혈투에서 결국 교주로는 죽음을 맞이하고 아카자가 승리한 듯 보이지만, 해가 뜨기 시작하자 겁에 질려 달아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승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혈귀의 최대 약점이 햇빛이라는 점은 작품 초반부부터 드러나 있지만, 아카자가 허겁지겁 달아나는 모습은 오히려 패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는 태양의 힘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으로, 아마테라스가 동굴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세상이 평온해진 아메노이와도 신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동반하는 일본의 욱일기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군이 해체될 때까지 일본의 육군과 해군의 군기(軍旗)로 사용되었다. 한가운데의 붉은 원에서 햇살이 퍼져나가는 형태의 육군기와 붉은 원을 깃대 쪽으로 약간 옮겨 변형시킨 형태의 해군기가 있다. 이후, 1945년 패전과 함께 일본군이 해체되자 욱일기 역시 사용이 중단되었지만, 1954년 육상자위대가 창설되면서 기존의 욱일기 문양에서 햇살의 개수를 줄인 형태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 해상자위대는 과거 해군기로 사용하던 형태 그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욱일기 논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욱일기가 사용되어 온 역사를 살펴볼 때, 일본이라는 ‘국가’를 나타내는 깃발이라기보다 ‘천황의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의 의미가 더욱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 종결 이전의 기존 세력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 일본의 권력 집단이 중심이 되어 현재의 ‘일본’을 구성하고, 여전히 욱일 상징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불편한 시선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아메노이와도 신화의 아마테라스처럼 ‘귀멸의 칼날’에서의 ‘태양’은 모든 근원이자 악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무조건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태양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모양의 욱일 문양은 태양신 즉 아마테라스의 가호를 받아 절대적인 힘을 얻고 그 힘이 뻗어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목숨을 위협하는 혈귀와 맞서 싸워야 하는 운명을 지닌 주인공 단지로가 부적처럼 항상 지니는 욱일 문양 귀고리는 악에 대항해 승리할 것을 의미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때까지 군국주의하에서 사용된 욱일기와 그 이후 조금씩 변형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욱일 상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국기(国旗)라기 보다 일본의 ‘군대’ 혹은 자위대라는 ‘유사 군조직’을 상징하는 군기(軍旗)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주변국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욱일기를 사용하는 데에는 욱일기가 상징하는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가호’와 ‘절대적인 승리’라는 일본의 신화적 모티프가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은 ‘귀멸의 칼날’의 주요 설정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화 시대인 지금 우리는 다양한 외국 문화콘텐츠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다. 또 다양한 OTT 서비스를 통해 세계 각국의 문화콘텐츠를 더욱 손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 우경화의 영향이 녹아든 문화콘텐츠 역시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으며, 한국의 대중들 사이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많은 이들이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제국주의 역시 종말을 맞이했다고들 생각하지만, 제국주의에 이용된 다양한 사상은 여러 형태의 문화콘텐츠로 변용되어 포스트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콘텐츠를 무작정 차단할 수는 없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접할 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하려는 노력은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 할 수 있겠다.
'귀멸의 칼날'은 만화책을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었기에, 각 콘텐츠 별로 표기를 달리했다. 만화책의 경우에는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의 경우 <귀멸의 칼날>로 표기하고, 특정 콘텐츠에 한정 짓지 않고 전체 스토리에 관한 내용의 경우 ‘귀멸의 칼날’로 표기하고 있다.
대사 인용은 일본어판 만화책의 대사를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참고문헌: 노윤선(2021) ‘일본 국민 만화’ 「귀멸의 칼날」의 영화 속 욱일기와 사무라이 정신, 日本文化研究, 79, 9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