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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현 Apr 10. 2023

알리오올리오

'알리오올리오'


호주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이 해 먹는 음식이다.


독립이라곤 기숙사생활이 전부인 내게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어 식사다운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매 끼니를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리는 할 줄도 모르면서 적당한 밀키트나 조리에 가까운 음식들을 생활에 영역으로 끌어들이곤 싶지 않았다. 너무 성의가 없달까. 주어진 환경과 나만의 기준 사이에 적당한 타협을 통해 합의를 본 게 알리오올리오다.


설거지거리도 적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 간단한 요리다. 제대로만 한다면 맛있기까지 하다. 이제 막 스스로를 세상 밖에 내던진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생존기술을 하나 익힌 샘이다.


구태여 레시피를 설명해 보자면,

잘게 다진 마늘과 페버론치노를 펜에 두른 올리브유로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달군다.

4분 정도 익힌 파스타면을 마늘향 가득한 펜으로 옮긴다. 면이 잠길 정도로 면수를 부어주고 다시 4분가량 졸인다. 이때 전분이 생긴다.

면수가 어느 정도 졸아들면 불을 끄고 파슬리와 후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기호에 맞게 넣어준다.

면과 기름, 전분이 생긴 면수, 치즈, 그 이외의 재료들이 함께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열심히 휘젛어준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졸이듯 끓인 면수에서 나온 전분이 찬바람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점성이 생기고 치즈와 기름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훨씬 좋아진다.

접시에 잘 담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


어려운 것 하나 없다. 간편하고 맛있다. 더불어 나름의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 만들었다고, 나름의 뿌듯함도 느낄 수 있는 잔잔한 기쁨을 주는 요리다.


독립이란 걸 해보면서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며 전전긍긍하는 날들을 보내는 와중에 내가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알리오올리오가 선물해 준다. 요리할 때만큼은 세상 모든 잡음이 사라지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리를 하는 와중에도, 밥을 먹는 와중에도,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도 온갖 근심과 걱정, 아집과 후회들은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도 내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긍정을 알리오올리오가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나의 일상 속 확실한 결과물이자 어쩌면 삶을 지탱해 주는 기둥 같은 시간이다.


솔직히 말하면 밖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다. 더 자극적이고 훨씬 편하다. 그렇게 쉬운만큼의 가치도 한없이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하루 중 단 10분, 5분 만이라도 스스로를 위한 일을 하고자 한다.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방청소를 하고, 이불정리를 하고, 너무 늦지 않게 자고 일어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에게 애써 수고스러운 일들을 더 많이 벌일수록 나를 더욱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오늘 하루 남을 위해 수고한 나를 위해, 온전한 나를 위한 값진 수고스러움을 선물하는 것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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