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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멜랑쥐 Sep 04. 2024

5일_오늘만 살아보자

오늘은 나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나는 가족들과 어릴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 어떤 일이 있었고 우스웠고 즐거웠고 했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주 어릴 쩍 일도 기억을 하는 편이다.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하자면 3살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의 여동생 그러니깐 나한테는 이모 할머니의 댁이 그 당시 부산 '거제리'라고 부르는 곳이었는데 시장입구에 작은 2층짜리 건물을 갖고 계셨다.  내리막 길에 있었는데 약간 반 지하 같은 곳에 건물이 줄줄이 있었다 할머니 건물은 작은 도로변 골목 안에 있었다.  1층이 약간 반지하 느낌의 거주하는 집이었고 2층은 철학관이 있었다.

아빠의 이종 사촌의 딸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아무튼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와 함께 시장에 심부름을 갔는데 우리 둘은 다툼이 있었고 알아서 간다고 서로 헤어졌다. 나는 길을 잃었고 곧 장 근처 파출소로 갔다.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파출소에서 집주소와 엄마 아빠 이름을 말해 주고 집 전화번호를 대고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해 달라고 했다. 경찰 아저씨 전화를 받은 아빠가 이모할머니 집으로 전화를 걸어 부산에 있던 가족들이 나를 데리러 왔었다. 아빠가 한 참 후에 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다시 이 이야기를 해 줬었기 때문에 기억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파출소 경찰 아저씨가 어떤 아기가 혼자 왔는데 부산 이모할머니 집에 왔고 언니랑 싸워서 길을 잃었으니 자기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빠한테 데리러 오라고 했단다.


이 사건으로 우리 집에서는 얘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었단다. 3살짜리가 말이다. 지금 나라도 어떤 아기가 그렇다면 믿지 못했을 것 같다.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키워야 하며 뭘 공부시켜야 하는지 걱정했었다고 했다.

왜냐면 우리 집은 가난했으니깐...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때도 평범했고 중학교 때도 평범했고 고등학교땐 더 평범 이하였고 지금도 평범하다.


한 번씩 이 사건을 생각해 보면 내가 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고 하고 내가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웃긴 일이다. 천재였다면 뭐가 돼도 되어 있었을 것 같은데...


반짝 천재?? 아기 때는 누구나 약간의 천재성이 있다고 하더니 나도 그랬었나 보다.

 

나는 크면서 꿈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살던 곳은 대도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논밭을 지나서 학교를 다니는 시골도 아니었다. 적당히 아스팔트를 밟고 다니는 중소 도시? 였다. 그래서 내가 본 직업 중에 가장 좋은 직업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지금 선생님이 됐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됐다. 아니 못 됐다가 더 맞다고 혼자 생각한다. 될 수 없었다. 여건이 그랬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가난한 집 맏이는 살림 밑 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우리집의 나였다. 공부를 대학까지 한다는 것은 부담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긴 했는데 시기를 지나서 대학공부를 한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또래들이 가진 대학의 추억과 낭만이 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이직을 위해 공부를 하고 4년 공부를 6년만에 일을 하며 힘겹게 졸업을 했다. 더 좋은 직장을 가져 돈을 더 벌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대학졸업장이 그렇게 필요했었나? 생각도 한다. 어차피 지금은 자영업자인데...

참 힘들고 피곤한 20대를 보냈다. 쉼 없이 달리기만 했었다.

왜냐하면 가장 아름다웠을 것 같은 시기에 나는 아빠 빚을 갚는데 20대를 다 보냈다. 투잡도 하고 쓰리잡도 했었다. 매일이 피곤했었다.


중3 때 엄마가 여고가 아닌 여상으로 나를 보내려고 할 때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간단한 이불과 보따리를 싸서 일주일을 집 앞 독서실에서 지내며 투쟁 아닌 투쟁을 했었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지만 많이 속상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엄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부모가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자식의 맘을 접어라고 말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싶다. 나는 며칠 때를 쓰고 그냥 수긍했었다.


내가 만약 여고에 가고 대학을 가고 운 좋게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행복했을까? 그리고 원하는 대로 됐을까?

알 수는 없지.


좋은 기억, 약간의 원망, 그렇지만 사랑도 많았던 추억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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