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그리고 정신과
그저께 퇴근 길 밤에 갑자기 싸래기 눈이 바람을 타고 온 세상을 뿌려 댔었다.
내가 사는 대구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올해는 눈이 한 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나 운이 좋게 늦은 시간에 깨어 있다 보니 눈오는 것을 다 보게 되었다.
늦게 퇴근하니 이렇게 좋은 밤을 보게 되는구나 싶었다.
눈이 오는 밤 열 두시가 넘었지만 그냥 잠을 자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잠시 넷플릭스라도 보고 잘까? 우리 똥강아지 애들을 데리고 눈내리는 걸 보여주러 나갈까? 현실은 모두 귀찮았다. 여러 생각을 할 수록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채널을 돌렸다.
'정신과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보다 보니 점점 빠져 들었다. 내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우울증이였구나. 불안장애가 왔구나. 혼자서 극복 할 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만들 수 도 있겠구나. 나는 더 깊은 터널로 빠지겠구나.
드라마 한편이 내 뒷통수를 쳤다. 저 모습이 나구나. 나도 이대로 있다가는 저런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죽을 만큼 힘든 것 같았지만 어쩌면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닐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전문가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절히 느꼈으니까 말이다.
용기를 내어 전화 예약을 했다. 전화를 받으신 간호사 선생님은 친절한 목소리로
"예약 당일 안 오실 것 같으면 미리 전화 한 통 주세요"
나는 꼭 갈 것이라고 답을 했다.
순간 용기를 내어 예약은 했지만 가지 않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진료 당일 나는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시 눈을 감았을 때 정신병원에 갇혀서 멍하니 밖만 바라로다가 인생이 끝나는 꿈을 꿨다. 또 다시 잠시 잠이 들었을 때는 진료를 보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한 참 들어 보시고는 가망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고칠 수 없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또 잠에서 깨기를 여러번 반복 했다. 그러다가 날이 밝았다.
나는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자나고 시간이 째깍 째깍 지나갔다. '그냥 다른 날 다시 올까?' '오늘부터 약을 먹으면 주말에 일정이 있는데 지장을 주지 않을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젊은 여자가 뭐 때문에 얼마나 심각하길래.. 나는 그정도는 아닌것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서 이상하고 궁금한 눈으로 나를 쳐다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들까지 미리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됐고 용기를 내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을 누르고 정신과 문을 열었다.